[마을과 살아 숨쉬는 곶자왈] 11 에필로그

교래곶자왈 자연휴양림 내 탐방로 인근에서 발견된 숯막은 숯을 제조하는 기간 일시적으로 추위를 피하거나 식사·휴식을 취했던 장소로 활용됐다. 특별취재팀

일본군주둔터·옹기가마·농경유적 등 역사문화자원 다양
일부 훼손된 채 방치…보전·관리 방안 및 추가 발굴 필요

지난 2002년부터 시작된 제민일보의 곶자왈 탐사는 곶자왈을 버려진 땅에서 보전해야 할 생명의 원천으로 변화시켰다. 특히 지난해 곶자왈의 옛 지명을 찾아 그 명맥을 잇게 한 데 이어 올해에는 주변 마을 주민들의 생활사가 반영된 역사문화유적의 가치를 조명하는 데 주력했다. 앞으로는 옛 선조들의 삶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서 가치가 높은 역사문화유적들에 대한 보전 방안과 함께 추가 발굴 등이 과제로 남아 있다.

△고유한 특징 간직

해안지역과 중산간지역 마을을 끼고 분포하고 있는 곶자왈은 저마다 고유한 특징을 갖고 있다.

지질·생태학적 측면뿐만 아니라 곶자왈내에 남아 있는 다양한 생활유적들은 제주 선조들의 생활상을 전해주는 소중한 인문자원이 되고 있다.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곶자왈은 다른 곶자왈과 달리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됐다. 생태탐방 숲길을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일본군 1개 소대 이상이 주둔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진지터를 비롯해 군 장비를 보관했던 창고시설, 탄약고, 참호, 막사시설 등 군사시설이 여럿 확인되고 있다.

근대 유적 외에 농경·목축 관련 유적들도 남아있다. 화순곶자왈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대규모 잣벽과 비를 피했던 임시 거처인 바위그늘, 원형 움막이 이를 방증하고 있다.

제주지역 곶자왈 중 유일하게 산양곶자왈에서는 조선시대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 옹기가마가 자리하고 있다.

또 동굴유적 내부에서 적갈색경질토기·도자기·옹기편 등 유물들이 다량 발견되는 등 당시 마을 주민들의 생활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청수곶자왈 내 시험림 주변 지역에서는 동굴유적 1기, 돌숯가마 1기, 일회용 숯가마 10기 이상, 산전터 5곳 이상, 머들 5기, 음용수유적 2곳 이상, 도요지 1기 등 수많은 생활유적 외에도 신앙과 관련한 병풍제단도 발견됐다.

저지곶자왈은 숯가마를 비롯해 주거유적인 '벳바른궤' 등 다수의 동굴과 산전터·머들 등 농경유적이 확인됐다.

교래곶자왈에서는 일회용 흙숯가마와 돌숯가마, 숯막(움막터), 보관용 간이창고 시설, 대형 움막터, 화장실 등이 발견되는 등 경제활동의 흔적이 깊게 배어 있다.

△문화재 지정 등 대책 시급

화순곶자왈내 일본군 군사시설은 생태탐방 숲길 주변에서 발견된 것에 불과해 실제 얼마나 많은 군사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추가 발굴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동쪽 생태탐방 숲길 인근의 참호 1기는 내부에 종가시나무가 자생하면서 함몰됐으며, 서쪽 생태탐방 숲길 인근의 참호 1기 역시 대부분 붕괴돼 겨우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상태로 근대 유적이 지닌 역사·교육적 가치를 고려할 때 관리 대책이 시급하다.

산양곶자왈 내 '조랑물' 인근에서 발견된 '노랑굴'은 도내 곶자왈에서 유일하게 발견된 옹기가마로 비교적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어 보존 가치가 크다.

넓적한 현무암 잡석과 진흙으로 벽과 천장을 쌓고 가마벽 내부에는 흙을 발랐으며, 천정이 허물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붕의 돌과 돌 사이에 잔돌을 끼워 넣는 등 옛 선조들의 지혜가 고스란히 녹아있지만 현재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저지곶자왈에서는 전체 길이가 확인되지 않을 정도의 대규모 경계 돌담이 확인됐다. 예부터 목축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졌었음을 유추할 수 있는 유적이지만 정확한 규모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또 교래곶자왈내 돌숯가마 1기는 100년 전에 축조된 것으로 보전 가치가 높지만 후면부(배연구)가 허물어지는 등 보호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외에도 송당곶자왈과 세화곶자왈을 비롯해 제한적으로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교래곶자왈에 대한 추가 유적 발굴 등은 물론 기존의 역사문화유적들에 대한 체계적인 보전·관리가 필요하다.

"후손에 물려줄 소중한 자산"
정광중 제주대학교 부총장

제주에서 곶자왈이 차지하는 지위나 품격은 분명 예전과는 달라졌다.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의 노력과 언론을 통해 곶자왈의 특성이 국내·외로 알려지게 됐고, 곶자왈의 가치 또한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것처럼 곶자왈의 특성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곶자왈에는 다양한 식물이 공생하면서 독특한 식생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로 곶자왈에는 파호이호이용암(묽은 용암)과 아아용암(된 용암)이 별도로 존재하거나 함께 존재하면서 토양층의 형성을 매우 어렵게 만드는 환경이 지배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로는 곶자왈 내부에 옛 선조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다양한 역사문화자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곶자왈의 특성은 제주 섬의 자연경관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자 곶자왈의 가치를 빛나게 하는 공공자산으로서의 의미를 더욱 높이고 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제주의 곶자왈은 현세대는 물론이고 후속세대들도 그 소중함을 인식하고 더 이상 파괴적인 이용으로 치닫지 않도록 깊게 유념해야 할 보존적 자산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곶자왈은 제주의 허파이자 생명수의 원천으로서,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지형지질 자원이자 경관자원으로서, 제주 섬의 원경관적 특성을 지닌 공간으로서, 제주를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연의 중요성을 설파할 수 있는 키워드로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지속가능한 활용방안 마련해야"
강창화 고고학연구소장

곶자왈은 6500년전 신석기시대부터 탐라시대에 이르는 동안 수렵과 채집의 장소로 활용돼 왔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목마장이 성행했으며, 조선시대 말에는 돌숯가마를 이용해 양질의 백탄을 생산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 주둔지로, 1948년 제주4·3 당시에는 주민들의 은신처로 이용되기도 했다.

1950~60년대 들어서는 일회용 숯가마에서 검탄 위주의 숯 생산이 활발했고,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연탄과 석유가 보편화되면서 곶자왈의 이용도 낮아져 현재의 숲이 조성되기에 이른다. 

곶자왈에 대한 무관심은 골프장과 대규모 주택단지 등 치유할 수 없는 개발의 상처를 남겼다. 

이에 따라 곶자왈은 물론 다양한 역사문화자원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종합학술조사 계획과 보존·관리계획 수립이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이와 함께 현장교육용 프로그램과 역사문화유적을 연계한 '자연생태와 문화유적 올레코스' 개발도 뒤따라야 한다. 차후에는 곶자왈내 역사문화유산에 대한 '종합 사전'도 편찬돼야 할 것이다. 

곶자왈에 산재하는 역사문화유적이 자리한 지점은 모두 그곳에 걸맞은 지명 등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다시 말해 역사문화유적 하나하나가 스토리텔링화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곶자왈 연구 결과물을 모두 엮은 '제주 곶자왈의 자연생태와 역사문화유산 생활사 자료관' 건립 등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보존과 활용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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