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부르던 푸근한 이름

돌로 만든 할아버지 '돌하르방'. 언제 들어도 푸근한 이름이다. 

제주목에서는 우석목, 정의현은 벅수머리, 대정현은 무성목, 간혹 한문에 밝은 유식한 사람들은 옹중석(翁仲石)이라고 각각 다르게 불린 이 수호신은 언제부터 '돌하르방'이라고 불렸을까.

제주도가 발간한 「제주문화상징」에 따르면 돌하르방은 제주목 동문성 밖의 아이들이 이름을 몰라 '돌하르방'이라고 부르던 것을 1971년 제주도민속자료로 지정할 때 공식명칭으로 정하면서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명칭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좋은 이름이 있을까 싶다.

생김새를 보면 둥그런 감투를 쓰고 툭 튀어나온 부리부리한 두 눈에 입은 굳게 다물고 굳게 움켜쥔 두 손으로는 배를 감싸 위엄 있는 모습을 연출한다. 

일부는 큰 몸집에 두툼한 가슴 근육을 뽐내며 용맹을 드러내는가 하면 옛 대정현과 정의현의 돌하르방은 편안한 표정으로 순박한 제주인의 모습과 닮았다는 평도 나온다.

현재 돌하르방은 제주에 45기, 서울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 2기 등 모두 47기가 남아 있다.

언제, 왜 만들어졌을까

1653년 이원진이 편찬한 「탐라지」를 보면 '영조 30년(1754) 김몽규 목사가 제주읍의 성 동·서·남 삼문 밖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보면 돌하르방이 1754년 무렵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기원에 대해서는 몽골의 영향이라는 학설도 있지만 다른 지방의 마을마다 있는 장승의 영향을 받아 제주 정주목신의 모습으로 조각한 것이라는게 대체적인 추론이다. 조선 후기 전국적으로 퍼져나간 돌장승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하지만 돌하르방은 장승과 다른 점이 많다. 

나무로 만든 장승은 대부분 손이 생략되지만 돌하르방은 두 손이 빠지지 않고, 수염이 없으며 입을 꼭 다물고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기능적으로도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장승은 주술·신앙적 기능이 강한데 비해 돌하르방은 그보다 성곽과 관계가 깊다.

지금은 관덕정과 삼성혈, 제주대학교, 제주국제공항, 민속자연사박물관 등에 흩어져 있지만 원래는 제주목·정의현·대정현의 읍성 성문 앞에 8~12기씩 세워져 있었다. 읍성 수호신의 역할을 했을 것이라 짐작되는 부분이다. 일부는 몸통에 정낭을 걸쳐놓았던 구멍이 있어 수문장 역할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호신에서 대표 문화아이템으로

돌하르방은 읍성을 지키는 역할 외에도 제주 사람들에게 마을의 악한 기운을 막고 소원을 이뤄주는 존재로 여겨졌다.

예전 어르신들은 마을에 질병이 번지지 않게, 외부의 난리로부터 지켜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특히 아기를 갖지 못한 여인들은 코를 쪼아서 돌가루를 물에 타 먹으면 좋다는 속설에 코가 떨어져 나가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는 주술이나 신앙보다 제주의 수호신을 넘어 제주를 대표하는 문화아이템이자, 제주를 상징하는 세계적인 얼굴이 됐다. 제주의 관문인 공항에서부터 관덕정, 제주시청, 삼성혈 등 주요 장소마다 방문객을 반갑게 맞는다. 

제주가 관광지로 떠오르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관광 기념품'으로 하나씩은 꼭 챙겨가는 소품이 됐다. 토종꿀과 오미자차도 돌하르방 모양을 한 병 속에 담아 팔았다.

돌하르방은 지역 예술의 좋은 소재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검은 현무암 모양의 일률적인 모습이었다면 요즘은 해학적인 표정과 몸짓 등 다양한 돌하르방 소재 기념품들이 등장해 눈을 즐겁게 한다. 

돌하르방을 예술적으로 해석해 만든 작품과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곳은 석공예 명장 장공익 옹의 작품을 모은 금능석물원과 제주 돌문화의 모든 것을 담은 제주돌문화공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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