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역에서 7월부터 11월까지 '물 만난' 녀석이 있다. 어둠이 낮게 깔린 제주 밤바다를 환하게 비추는 불빛을 쫓아 몰려드는 바로 갈치다. 입맛이면 입맛, 손맛이면 손맛 그 어느 하나도 놓칠게 없는 물고기가 바로 갈치다.

△문헌 속 갈치

갈치와 우리와의 인연은 꽤나 오래됐다. 조선시대 정약용의 형이자 성리학자·생물학자인 정약전(1758~1816년)이 집필한 우리나라 최초의 수산학 관련 서적 「자산어보」에도 갈치에 대해 나와 있다.

이 문헌에는 '군대어(裙帶魚)의 속명은 갈치어이다. 생김새는 긴칼과 같으며 큰 놈은 길이가 8~9자나 된다. 이빨이 견고하며 조밀하게 나와 있다. 꽁치와 같은 종류인데, 몸이 약간 납작할 뿐이다'라고 갈치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1690년 편찬된 중국어 어휘사전「역어유해」에도 '군대어'라고 적고 한글로 따로 '갈티'라고 적어 놓았다.  

조선시대 실학자 서유구(1764~1845년)는 「난호어묵지」에서 갈치에 대해 '생김새가 칼집에 칼처럼 좁고 길며, 큰 놈은 10자나 되는데 비늘은 없다. 머리는 둥글고 입에는 개이빨 같은 날카로운 이빨을 갖고 있다. 어부들은 그 꼬리가 칡넝쿨처럼 가늘고 길어서 갈치라고 한다. 여기서의 치는 방언으로 뱀처럼 기어가는 것을 이른다'라고 설명했다.

△은갈치와 먹갈치

갈치는 은갈치와 먹갈치로 구분된다. 사실 똑같은 갈치인데 잡는 방법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다.

제주하면 떠오르는 은갈치는 제주 연근해에에서 주로 잡힌다. 특히 제주 해역 수온이 따뜻한 탓에 남해안과 달리 12월까지도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갈치를 낚는 방법도 여러 가지인데 채낚기어선으로 낚아 올리거나 저인망 트롤링어선으로 하기도 하고, 아니면 야간에 대낮처럼 환하게 불을 밝히고 배낚시를 해서 낚기도 한다. 

제주 은갈치는 채낚기 어선으로 한 녀석 한 녀석 낚아 올렸기에 은분이 그대로 살아있어 은갈치가 된 것이고, 목포에서는 대형그물로 한꺼번에 낚아 올렸기에 녀석들끼리 서로 부딪쳐 몸에 있는 은분이 벗겨져서 마치 먹으로 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은갈치를 더 쳐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국민생선으로 

갈치는 한때 누구나 즐겨 먹을 수 있는 '국민생선'이었다. 갈치는 꽁치, 정어리, 고등어, 오징어, 동태에 청어와 양미리, 여기에 양동이로 팔았다는 도루묵, 임연수까지 서민의 10대 어종으로 꼽혔다.

하지만 어획량이 줄면서 언제부터인가 '금갈치'가 되면서 식탁과 다소 멀어졌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20년 만에 제주 해역에서 갈치 대풍이 들었기 때문이다. 성산항 등 제주의 항구에는 '물 반 갈치 반'이다. 

지난달에만 제주도내 6개 수협 위판장에서 7월 한달간 거래된 위판량은, 1만627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876t에 비해 갑절 이상 늘었다.

어민들 입장에서는 어획량이 늘면서 가격이 떨어지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이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

어쨌든 올 여름 제주를 다시 찾은 은빛 찬란한 갈치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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