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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과도기를 찾아서, 근대문화유산

기사승인 2017.10.12  18:2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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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식 제주학연구센터장·논설위원

조천 마을에 들어서면 연북정과 비석거리 못지않게 항일운동 사적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역사의 짙은 향기를 맡을 수 있다. 1919년 조천만세운동을 주도한 조천김씨가 거주한 이동(梨洞)에는 금대(琴臺)란 언덕에 만취 김시우 선생의 학덕을 기린 비석이 세워져 있다. 김시우는 1918년 별세했는데, 다음해 소상 때 그가 살던 집에 친지들이 모여서 조천만세운동의 거사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그의 집은 전통 기와집으로서 격식 있는 자태를 갖춘 고급 문화유산 감이었다. 역사학자 김찬흡 선생과 10여 년 전 그 집을 답사했을 때 집 안채에서 올려다 본 상량문의 선명한 필체가 기억난다. 허나 김시우 선생의 고택은 현재 사라지고 신식 건물이 들어서 있다. 조천 마을 답사 때마다 금대를 찾아가면 소중한 문화유산을 현재의 우리 때문에 잃어버렸다는 자책감을 느끼곤 한다.

한편으로는 1920년 제주도해녀조합 창설의 일등 공헌자였던 조천면장 김태호의 고택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어서 안도하곤 한다. 이 집은 마을 주민들이 고려 말 이래 조천관 옛터로 기억하고 있는데도 미지정 문화재로 방치되고 있다. 김태호의 아들 김시용은 항일 야학운동, 소비조합운동을 주도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해방 직전 옥사하였다. 조천관 처소이면서 김태호?김시용의 항일정신 역사를 담고 있는 이 기와집 또한 제주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서귀포 답사 때에는 반드시 이도백의 옛집을 들리곤 한다. 이도백은 가파도 출신으로서 청년 시절에 서귀포로 이주해서 정미소?전분공장 등을 운영하며 거부가 되었다. 그는 일제강점 말기 서귀포 청년들과 더불어 항일 독서회 등을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해방 후에는 남로당 서귀면당 책임자를 맡아서 활동하다가 4?3 발발 직전에 집안에 토굴을 파서 7년 간 은둔생활을 했다. 그의 집은 일제 때 만든 2층 돌집으로서, 서귀포 주민들이 '백만환집'이라고 부를 정도로 유명하였다. 이도백 옛집은 현재 형체를 그대로 유지한 채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이 근대문화유산 또한 언제 허물어질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눈앞에서 개발의 명목 아래 중요한 근대문화유산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도로가 정비되고 현대식 건물들로 교체되면서 옛 것들은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멸실되고 있다. 각종 관공서, 종교시설, 군사시설, 주거·숙박·공장·상업·유흥업 관련 생활사 유적 등이 사진 속의 이미지만 남고 사라져가고 있다. 옛길, 돌담, 바다·산간 생활유적 등도 마찬가지 길을 밟고 있다.

근대문화유산은 현재 문화재보호법을 통해서 등록문화재로 분류하여 보존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법적으로 문화재청이 근대문화유산의 등록과 관리를 직접 담당함으로써 지방자치단체는 거의 손을 놓고 있는 현실이다. 중요한 유산일지라도 지방지정문화재와 국가등록문화재에도 속하지 않은 수많은 근대유산들이 방치되고 있다. 앞으로 문화재보호법 개정을 통해서 지방정부가 등록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바꿔야 할 것이다. 최근 각 자치단체 별로 근대건축문화유산을 보전하려는 자발적인 움직임이 있는데, 이 또한 상위법이 없는 상황에서 보존 관리의 효력을 갖지 못하는 실정이다.

제주특별자치도 문화재 당국에서는 이제라도 제주지역의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총체적인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항시적인 모니터링 체제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현재까지는 제주연구원에서 2013년 발간한 <제주 근대 역사문화시설의 문화자원화 방안> 보고서가 유일한 조사 성과인 듯하다. 마을별로 근대 시기에 건립된 역사문화시설을 전부 조사하고, 보존 상태, 활용 가능성 등에 관한 평가지표 항목을 설정하여 전문연구기관에 관리를 위임할 필요가 있다. 문화재청에 등록 신청만 해놓고 해바라기 식으로 쳐다보는 문화재 행정으로는 근대유산의 멸실을 막는 데 역부족이다. 특별자치도에 걸맞은 선도적인 문화재 행정을 기대해 본다.

박찬식 webmaster@jemin.com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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