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섬' 제주

김만덕.

'붉은 닭의 해'인 2017년 정유년(丁酉年)이 저물어 가는 연말이다. '황금 개의 해'인 2018년 무술년(戊戌年)이 딱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특히 올해는 어느 해보다 숨가빴다. 연초부터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 다사다난한 사건들로 마음이 무거운 한 해였다.

하지만 한 해 중에서도 연말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묘한 힘이 있는 시기다. 지나온 시간과 주변을 둘러보는 차분한 마음이 드는 것도 연말이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중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실천하기에 가장 좋은 연말, 하나 하나의 작은 실천이 모여 큰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나눔' 세상에 들기에 최고의 시기다.

'나눔의 섬' 제주

사실 제주는 예부터 '나눔의 섬'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작은 음식이라도 생기면 정낭 넘어 이웃과 나누는게 당연한 문화였다. 제주문화상징으로도 선정된 '궨당과 삼춘'에서 그 독특한 정서와 지혜를 알 수 있다.

좁은 지역에서 같은 동네나 이웃마을과 인간관계가 그물망처럼 얽혀 '사돈에 팔촌으로 걸린 궨당'이란 말이 곧잘 사용된다. 때문에 제주사람들은 동네 어른이면 친척이 아니더라도 남녀 구분 없이 모두 '삼춘'으로 불렀다.

마을 사람 모두 한 가족, 궨당인 것처럼 여기면서 강한 공동체의식을 갖게 되고 자연스럽게 서로 나누며 사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재일동포들도 일본에서 먼저 자리잡은 사람들은 마을사람들을 불러들여 도움을 주고 고향발전을 위해 기금과 감귤묘묙 등을 보내줬다. 

부자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제주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거상 김만덕(1739~1812)이 대표적이다. 

여성의 바깥 활동이 극히 제한적이었던 조선시대에 태어난 김만덕은 가장 가난한 지역인 제주에서 객주를 운영하며 막대한 부를 쌓았다. 그럼에도 늘 검소하게 살면서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았다. 

김만덕은 정조 20년 제주가 계속되는 재해로 기근에 시달리고, 조정에서 보낸 구휼미마저 풍랑에 침몰하는 불상사까지 겹쳐 제주백성들이 굶어죽을 위기에 처하자 전 재산을 털어 육지에서 쌀을 구입해 살려냈다.

「만덕전」을 쓴 채제공은 "탐라에 큰 기근이 들어 만덕이 천금을 내어 쌀을 육지에서 사들였다. 모두 만덕의 은혜를 찬송하여 '우리를 살린 이는 만덕이네'라고 했다", "만덕의 이름이 서울 안에 가득하여 공경대부와 선비들 모두 만덕의 얼굴 한 번 보기를 원하지 않는 자 없었다"며 만덕의 공을 기렸다.

뜨거운 제주 기부 열기 

김만덕 정신을 계승한 제주도민들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크고 작은 기부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김만덕기념사업회 등을 통해 나눔 쌀을 쌓고 우리보다 어려운 외국에 만덕학교를 만들면서 나눔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재일동포 기업가인 김창인 회장은 2008년부터 제주대학교에 200억원 넘는 발전기금을 쾌척하는가 하면 서귀포시 출신 독지가인 고 강창학 옹은 26만㎡의 땅을 기부하는 등 제주의 대표적인 기부자로 존경받고 있다.

최근에는 1억원 이상 고액기부자 모임인 공동모금회 아너소사이어티와 대한적십자사의 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 회원도 제주에만 각각 75호·4호 회원이 탄생했다.

도민들의 작지만 큰 나눔도 어느 지역보다 뜨겁다. 이는 다양한 지표로 확인할 수 있다.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지난해 제주지역 1인당 공동모금회 모금액은 1만2621원으로 전국에서 1위를 기록했다. 전국 평균 1만858원에 비해 16.2%(1763원) 많았다.

1인당 모금액이 전국 평균을 웃도는 지역은 제주를 비롯해 울산(1만1431원)과 세종(1만542원), 충남(1만118원) 등 17개 시·도 가운데 4개 지역에 불과하다.

어려운 이웃과 먹을거리를 나누는 식품 기부 열기도 뜨거웠다. 지난해 도내 푸드뱅크 4곳과 푸드마켓 2곳에서 기부 받은 식품 접수액이 모두 21억2000만원에 달했다.

매달 3만원 이상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는 '착한가게'가 2126개, 매달 2만원 이상 가족의 이름으로 기부하는 '착한가정'도 235가정에 이르는 등 나눔에 참여하는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도민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세상에 따뜻함을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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