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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 가혹한 역사 속에 뭉개진 순결의 정신을 복원하다

기사승인 2017.12.07  16:4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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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읽기를 통한 치유의 인문학 29. 세기의 여성감독⑤ 변영주편

변영주 감독의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 중 3편 '숨결'(1999).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는 1편 '낮은 목소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5), 2편 '낮은 목소리2'(1997), 3편 '숨결'(1999) 등 총 세편으로 완성된 다큐멘터리이다.

한국에서 여성 감독은 아직 낯설다. 한국 주류 영화에 여성 감독의 영화가 언급되는 예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2000년 대 이후 급부상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감독인 고(故) 박남옥 감독(2017년 타계)을 필두로 이미례, 임순례, 이정향, 변영주, 박찬옥, 정재은, 모지은, 이수연, 방은진, 김미정, 신수원, 장유정, 부경미 등에 이르기까지 여성 감독들의 활약은 계속되고 있다. 더욱이 독립영화계에서의 여성감독의 활약은 돋보인다. 그 중에서도 단연 한국 여성 감독의 영화를 주목하게 한 건 '낮은 목소리'(1995)의 변영주 감독이다.

변영주 감독은 '낮은 목소리' 연작시리즈 이전에 이미 제주도의 기생관광에 관한 다큐멘터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3)을 발표한 바 있다. 이때 만난 매춘 여성의 어머니가 위안부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낮은 목소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5)을 만들게 된 것이다. '낮은 목소리' 연작시리즈는 일제강점기 위안부 여성 문제를 전면적으로 드러낸 다큐멘터리이며, 이를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치적, 역사적 복원을 시도하였다. 또한 여성의 삶이 전쟁이라는 폭력 앞에서 어떻게 무참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의 역사에 대한 연대의 불꽃을 피웠다고 볼 수 있다. 영화를 통한 윤리적 책임이란 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변영주 감독의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는 1편 '낮은 목소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1995), 2편 '낮은 목소리2'(1997), 3편 '숨결'(1999) 등 총 3편으로 완성된 다큐멘터리이다. 편마다 단독으로도 의미 있지만 연작시리즈로 읽어 내려갈 때 훨씬 한국현대사가 낳은 여성과 역사의 비극에 깊이 가닿을 수 있다. 1편에서는 나눔의 집에 모여 사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다루고 있고, 2편에서는 김대중 정부 이후 위안부 할머니들이 경기도 광주로 이사한 이후의 일상을, 할머니들 스스로가 역사를 재구성하면서 감독의 내레이션과 자막을 최대한 지우고 있다. 대신 햇살, 바람, 하늘, 물빛 이미지들로 사유의 자리를 할애하고 있다. 

준비기간까지 합쳐 총 7년이라는 시간동안 이어진 '낮은 목소리' 제작은 이중구속에 시달렸다고 보아야 한다. 1편을 끝내고 나니 7000여만원의 빚이 생겼다고 할 정도로 제작으로 인한 빚과 힘들지만 해내야 한다는 역사의 빚을 동시에 짊어진 것이다. 하지만 1편에서 3편에 이르는 과정에서 감독도 할머니들도 모두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1편이 다소 격앙되고 충격적인  증언과 고백이 주를 이루고 있다면 2편은 "생애 처음으로 나를 위한 농사를 지어본다"는 할머니들의 소박한 일상이 '웃픈' 행복에 젖게 한다. 또한 "너무 억울해서 쉽게 안 죽고 싶어요. 절대 안 죽을 거예요"라고 외치던 강덕경 할머니('예술 할머니'로 통한다)의 죽음은 '이제 저 분들의 삶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에 새롭게 마음을 다잡게 한다.

3편에 와서는 이제 감독이 할 일은 거의 없는 듯하다. 거리두기가 확실해졌다. 감독은 뒤로 빠지고 감독 역할을 이용수 할머니가 대신한다. 이용수 할머니는 김현석 감독의 영화 '아이 캔 스피크'(2017)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다. 배우 나문희에게 '2017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안겨준 장본인인 것이다. 이용수 할머니는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동료 할머니에게 카메라를 들이민다. 농담처럼 슬쩍. 두런두런 하는 이야기들 속에 아픔이, 웃음이, 삶이, 죽음이 섞여 있다. 편안한 듯하면서도 가슴 한 켠에서 쉭쉭거리는 바람 소리는 어쩔 수 없다. 남들은 다 알아도 내 딸만큼은 몰랐으면 한다는 김윤수 할머니 얘기. 할머니에게는 청각장애인의 딸이 있다. 자신의 성병 때문에 아이가 청각장애인이 되었다고 믿는다. 딸은 절대로 이 사실을 알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 딸은 알고 있었다. 다만, 어머니를 위해 숨기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카메라는 놀라운 충격과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쉬는 할머니의 얼굴을 클로즈업 한다.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연작 시리즈는 감독 그 자신과 더불어 위안부 할머니들의 성장과 치유를 위한 성실한 작업이었다 할 수 있다. 그 사이 많은 할머니들이 저 세상으로 갔다. 하지만 수요집회는 여전히 계속 되고 있고, 국민성금으로 소녀상도 세워졌다. 영화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할머니들은 유엔에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지금 살아있는 할머니들 나이가 평균 90.4세다. 그들은 오늘도 수요집회에서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죽는 날까지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 모두가 어찌 '낮은 목소리'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으랴 만은 이 영화가 견인차 역할을 했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변영주 감독이 그 일을 해냈다.

영화 '화차'.

워낙 '낮은 목소리' 이미지가 강해서 변영주 감독은 극영화와는 어울릴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낮은 목소리' 이후 '밀애'(2002), '발레 교습소'(2004), '화차'(2012) 등의 극영화를 만들었다. '밀애'(김윤진, 이종원 주연)는 전경린의 소설 '내 생애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을 원작으로 한 멜로 드라마이고, '발레 교습소'(윤계성, 김민정 주연)는 대한민국에 사는 20대 청춘의 우울과 슬픔을, '화차'(이선균, 김민희 주연)는 아무에게도 보호받지 못한 삶을 산 여성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특히 화차의 마지막 장면은 하얀 눈 위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듯 서늘하다. 

강선영이라는 가짜 이름으로 살아가는 차경선(김민희 분), 그는 부모도, 친구도, 지문도 없다. 아버지의 빚 때문에 사창가로 끌려갔고, 간신히 빠져나왔으나 아빠를 모르는 아이를 임신하고, 또 그 아이를 잃고, 살아갈 희망마저 잃는다. 하지만 사랑하는 남자 문호(이선균 분)를 만났으나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으면서 비극은 시작된다. 결국 기차 레일에 스스로 몸을 떨어뜨리는데, 그녀의 한마디가 이 영화의 진실을 말해준다. " 나 사람 아니야, 나 쓰레기야. 근데 나한테 아무도 없었어. 내가 다 했어. (……) 행복해지고 싶어서.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수요집회에서 위안부 할머니가 말한다. "우리들은 아직 해방이 안됐습니다"라고. 몸은 풀려났으나 마음은 아직도 고향에, 열여섯 순정에, 한 번도 피우지 못한 꿈에 있다고. 나라가, 역사가 보호해주 못한 할머니들은 아직도 해방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화차'의 선경도 말한다. "아무도 없었다"고.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아서 영혼은 끝도 모를 나락으로 추락하고 말았다고. 변영주 영화가 끊임없이 던지는 물음은 바로 이것이 아닐는지. 나라도, 부모도, 친구도, 지문도 없이…, 아무도 보호해주지 않는 이들이 얼마나 외롭고 슬픈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당신들은 아느냐고.

강은미 문학박사·제주대 스토리텔링 강사 webmaster@jemin.com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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