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겨울나기

동장군의 계절이 돌아왔다. 비교적 따뜻했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추위가 일찍 찾아오면서 두툼한 외투를 꺼내는 시기도 빨라졌다. 반짝 추위는 아니다. 기상청 예보를 보면 제주는 다음달 중순까지 6도에서 7도 내외로 평년과 비슷하거나 낮은 기온이 이어질 전망이다. 온 세상을 동심으로 채우는 눈도 자주 내리면서 제주는 어느덧 '겨울왕국'으로 변해간다.

겨울은 추워야 제맛

겨울 추위가 싫고 불편한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사실 계절은 그 계절다워야 한다. 살랑거리는 햇살에 스르르 녹는 눈처럼 마음도 녹아내리는 봄, 강렬한 햇볕 아래 시원한 계곡·바다가 온몸을 유혹하는 여름, 사락사락 낙엽소리에 감성 충만해지는 가을 모두 그 계절만의 맛이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겨울은 역시 추워야 제맛이다.  제주의 선인들이 오랜 경험으로 깨달은 진리다. 척박한 토질에 논벼는 극히 드물고 작게나마 밭벼를 심기는 했지만 역시 주 작물은 보리였던 시절, 겨울이 따뜻하면 보리가 웃자랄 뿐만 아니라 병해충이 월동해 그해 농사를 망칠 수 있다.

보리와 어울리는 겨울 간식은 잘 말린 감저(甘藷, 고구마)였다. 1970년대까지 제주의 시골에서는 가을볕에 말리고 있는 고구마를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다. 말린 고구마는 '절간고구마'라는 정식 이름보다 '빼때기'로 흔히 불리곤 했다.

빼때기는 주로 전분공장이나 주정공장으로 보내졌지만 먹을 것 귀하던 추운 시절 아이들의 간식으로도 많이 활용됐다. 2~3일 말린 빼때기는 꼬들꼬들 단맛이 일품이었고, 딱딱한 빼때기 몇개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 껌처럼 질겅질겅 씹으면 부드러워지고 단물이 우러나왔다.

겨울은 특히 아이들의 계절이다. 겨울나기를 걱정해야 하는 어른과 달리 아이들은 썰매를 타고 동네 언덕을 신나게 내달릴 생각에 들뜬다. 아침에 눈을 뜨고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으면 몰려나가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과 처마끝 고드름을 떼어 칼싸움을 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꽁보리밥만 먹다가 김장과 삶은 메주콩, 팥죽 등 특별한 것도 자주 먹을 수 있어 더 신나는 계절이었다.

추워서 더 애틋했던 제주 겨울의 기억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겨울 풍경은 추위 없이 만들어질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 난다. 

색다른 제주 낭만 만끽

봄의 신혼여행과 여름철 해변으로 대표됐던 제주관광은 이제 옛말이 됐다. 12월을 맞아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겨울 제주여행'이 '7말8초'(7월말~8월초)로 불리는 여름 극성수기에 못지 않을 정도로 인터넷에 오르내린다.

따뜻한 섬이라는 이미지가 여전하지만 제주는 한라산과 중산간의 존재로 인해 전국 어느 여행지보다 겨울 풍경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장소다.

한라산의 상고대를 빼놓고 겨울 제주를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쉽게 중산간 지역으로만 발길을 옮겨도 제법 많이 쌓인 눈세상을 만날 수 있다. 바람결에 몸을 맡기고 나뭇가지마다 내려앉은 눈꽃, 하얀 눈 사이로 홀연하게 빛을 발하는 붉은 동백꽃, 사시사철 변함없이 푸른 절개를 자랑하는 침엽수를 감상하며 걸어보자.

앞선 발자국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면 어느새 마음이 차분해진다. 단 중산간에서는 해발고도 몇십미터 차이로 길이 얼어붙는 일이 많고 한적한 마을도로는 눈이 그대로 쌓여 있어 스노우 체인을 챙기는 것이 좋다.

갈 곳을 정하지 못했다면 제주관광공사가 추천하는 '겨울에 가볼만한 제주 야외 관광지'도 참고할 만 하다.

드넓은 곶자왈 지대 속에 제주를 담은 석조 작품에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 앉은 제주돌문화공원과 만화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환상적인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에코랜드, 겨울이면 빽빽하게 우거진 숲에 눈꽃이 아름답게 내려앉아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서귀포자연휴양림 등 겨울 여행의 낭만을 미리 만끽할 수 있다.

16일부터 내년 1월 21일까지 37일간 열리는 '2018 제주윈터페스티벌'을 비롯해 한라산과 시내에서도 △사계절 눈썰매 △스노우 범퍼카 △동계스포츠 체험존 △대형 눈사람 포토존 등의 다채로운 즐길거리가 준비돼 있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