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각종 다이어리들.

바쁜 일상을 함축한 작은 우주…암호 같은 일정부터 소회까지
SNS 홍수 속에서도 아날로그 감성 담는 특별한 의식 의미로

'담는 그릇'따라 다른 그림, 매년 다시 만들어지는 '삶의 흔적'

'2017'이란 숫자에 빈틈이 줄고 있다. 손가락을 꼽아 셀 수 있을 만큼 남았다. 한 손이 아닌 게 어딘가 싶다가 불쑥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가'란 생각에 빠진다. 그럴 때다. 올해는 유난하다. 어떻게 한 해를 보냈는지도 모를 정도다. 집에 창이란 창을 다 열어도 더워서 여름이구나 했고 그나마 날씨가 추워져서 겨울인 줄 알았다는 얘기가 우스개처럼만 들리지 않는다. 어떻게 살았나 한참 넋을 놓고 있다 불쑥 다이어리를 펼쳤다. 아이를 따라 올해 '5학년'엄마가 된 사정부터 암호처럼 적혀있는 일정이며 이런 저런 계획들까지. 한꺼번에 쏟아내니 그 양이 꽤 된다. 덕지덕지 붙어있는 메모장을 떼어내고 보니 제법 말끔하다. 이것들과 하나하나 이별은 한다. 어딘지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렇게 한 해가 간다.

# 느리고 질긴 힘

언젠가 '펜 좀 굴렸다'는 명사들의 다이어리에 대한 글을 읽었다. 순간 감흥에 끌려 적어놓은 시 한편이라든가 누군가의 글, 편지와 스크랩한 신문까지 기억을 대신한다. 매일 한 줄이라도 메모를 한다는 이해인 수녀의 책상에는 다이어리를 꾸밀 색연필이며 스티커가 가득하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런 것들이 한 해를 숨 가쁘게 달려 마지막 스퍼트를 한다.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나면 '언제 썼는지도 모를 이야기들'로 삶의 흔적 하나가 만들어진다.

SNS에 습관처럼 일지 비슷한 걸 끄적이면서도 다이어리를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해과 끝이 비슷하다. 솔직히 고백하면 같은 글이 적혀 있다. 튼튼한 것 속에서 틈은 태어난다 ?서로 힘차게 껴안고 굳은 철근과 시멘트 속에서?숨쉬고 김기택 시인의 '틈'이다. "돌아다닌 길은 있었던 것이다?길고 가는 한 줄 선 속에 빛은 우겨지고?버팅겨 허리를 펴는 틈?미세하게 벌어진 그 선의 폭을?수십 년의 시간, 분, 초로 나누어본다?아아, 얼마나 느리게 그 틈은 벌어져온 것인가?그 느리고 질긴 힘은?핏줄처럼 건물의 속속들이 뻗어 있다"

이전에도 수 십 번은 읽었던 글이지만 애써 손으로 옮겨 쓴 까닭은 아쉽게도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답 없는 인생에 그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라 위안한다. 어쩌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잘 지켜내는 것에 대한 감정 팔이 아니면 자기 포장은 아니었을까. 더 어쩌면 앞만 보기위해 붙들었던 긴장의 끈이 어디선가부터 풀리고 있음을 깨달았던 때문일지도 모른다.

# 그리움 모르는 시끄러운 무리

"바위처럼 굳어 침묵하던 그 그리움들이 눈을 뜨고 일어나면 그것은 진달래가 된다. 미친 듯이 불던 바람이 어느 날 사월에 갑자기 조용하게 잠들어버리면, 그 자리에 진달래가 핀다. 산울림 소리가 다시 피를 얻고 살을 얻게 될 때 진달래 한 송이가 핀다. 꽃이 되지 않는 그리움은 시가 되지 않는다. 바위가 되어버린 그리움도 바람으로 남는 그리움도 모두 다 피거라, 사월이면… 그리고 시가 되어라. 그리움들의 변신이 끝나는 마지막 자리에서 피어나는 꽃, 그 진달래를 꺾어 옛날 소월이 그랬듯 뿌려라. 그리움을 모르는 저 시끄러운 무리들이 다니는 길거리 위에"(이어령 '그리움의 변형' 중)

4월 어느 날의 메모에서 「읽고 싶은 이어령」을 찾았다. 아마도 그 때 위안이 필요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디에도 책이 없다. 노 문학가가 꼬집은 것처럼 '그리움을 모르는 저 시끄러운 무리'안에 있었던 때문인 것 같아 얼굴이 뜨거워진다.

'미치도록 아프고 슬펐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촛불을 켜 겨울을 보낸 이들에게 벚꽃은 유난히 화사했고, 그 안에서 아픔을 말해야 하는 사람들은 가슴 저렸다. 그 안에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시끄러운 무리였음을 지금에야 반성한다.

# 어떻게 이별할 것인가

'어떻게 이별할 것인가'

몇 장 안남은 다이어리를 앞에 두고 그만 고민이 커진다. 사실 빈 페이지가 더 많아 아쉽다. 매년 그렇듯이 내년에는 다이어리 같은 것은 챙기지 않겠다는 다짐을 할 판이다.

그리고 12월 어느 날 '파미르-오 멸'이란 메모를 찾았다.

영화 '지슬'이후 시나브로 관심에서 멀어졌던 이가 마른벼락처럼 던진 아주 짧은 단편 영화 '파미르'가 답을 준다.

오 감독은 세월호를 모티브로 '이별 앞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을 들춰냈다. "계속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들 속에 상처받고 또 상처를 내는 현실을 말하고 싶었다"는 인터뷰는 듣고 고개 몇 번 끄덕인 뒤 슬쩍 잊었다. 그 보다는 참여 감독 중 가장 최장 시간 촬영을 했다는 말에 "담는 그릇이 제일 중요한데 그것을 그렇게 쉽게 빚어버리면…"이라 답했던 것이 생각났다.

참 다행이도 다이어리의 '12월'에 제법 많은 여백이 있다. 파미르의 주인공이 먼저 간 친구를 향해 남긴 말처럼 인상 깊은 메시지를 쓰고 싶은 욕심도 있다. 마지막을 남기는 것도, 다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도 다 선택의 문제다. 하나는 2017을 채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2018을 조금 일찍 시작하는 일이다. 그렇게 한 해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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