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인과 흑돼지

선조 돈분 이용 선순환농업 실천
화장실 인분 먹어 '똥돼지' 불려

'돗 잡는 날' 전통결혼잔치 시작
토종 사라질 위기서 천연기념물

'똥돼지'로 불리는 제주토종 흑돼지는 단순한 식용가축을 넘어 선조들과 함께 이어진 제주의 전통문화다.

우리나라 흑돼지의 역사는 고구려시대로 추정될 정도로 역사와 전통이 깊다. 삼국지 위지동이전 읍루조에 '사람들이 집 한 가운데 뒷간을 만들고 그 주위에 모여 한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식 가옥구조는 북쪽에 방과 부엌이 달린 정옥이 있고, 서쪽에는 뒷간과 돼지우리가 있으며, 그 집 주의는 돌담으로 쌓은 구조다. 즉, 뒷간과 돼지우리가 붙어있는 구조로 고구려인들은 뒷간에 돼지를 키우면서 인분을 먹여 키워왔다.

똥돼지는 제주에서만 키운 것은 아니다. 전라남도 남원읍이나 지리산 산간지역 등에서도 똥돼지의 흔적은 남아있다.

제주 선조들이 똥돼지를 키운 주된 이유중 하나는 척박한 환경에서 나름대로 지혜를 발휘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땅이 비옥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큼 양질의 거름이 필요했고, 돼지가 발로 뭉갠 똥과 짚이 시간이 지나면서 좋은 퇴비가 된 것이다.

외국인이나 제주전통문화를 모르는 사람들은 제주사람들은 비위생적이고 화장실에 돼지를 키워 불결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인분을 돼지에게 먹이고, 돈분을 다시 양질의 거름으로 생산, 농산물 재배에 쓴 것이다. 현재 대안농법으로 부각되고 있는 선순환농법을 제주선조들은 수천년전부터 활용했다.

똥돼지가 제주지역에서 오랜기간 키워진 이유중 음식문화도 밀접해 있다. 제주는 다른 지역과 달리 쌀이 귀해서 조나 콩, 보리, 같은 잡곡을 많이 섞어 먹었다. 또한 이런 음식들은 돼지먹이로 쓸 수 있는 음식찌꺼기가 많이 나오지 않았기에 인분을 먹인 것이다. 

사람의 몸에서 흡수되지 않은 영양분은 그대로 인분에 남아있고, 돼지에게 인분을 먹이면서 처리가 곤란한 똥을 자연스레 처리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있다. 

제주선조들에게 있어 돼지는 아주 소중한 자산이다. 이 때문에 자식이 결혼할때만 집에서 기르던 돼지를 잡아 음식을 만드는 등 아주 중요한 날에만 쓰여졌다.

이에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결혼풍습이 바로 '돗 잡는 날'이다. 제주의 결혼식은 3일에 걸쳐 진행된다. 첫날은 잔치 음식에 꼭 들어가는 '돗'(돼지의 제주 사투리) 잡는 날이다. 마을사람들이 모여 남자들은 돼지를 잡고 여자들은 음식을 장만하면서 사실상 잔치가 시작된다. 

둘째 날은 전날 잡은 돼지로 잔치음식을 만들어 '가문잔치'를 벌인다. 이 때 예식장에 가지 못하는 지인들이 찾아 부조를 전달한다. 그리고 셋째 날 결혼식이 진행된다. 

지금은 많이 간소화돼 대부분 당일 잔치로 끝나지만 농촌 마을에서는 장자나 장손이 결혼할때는 여전히 3일 잔치를 하기도 한다.  

제주선조들이 똥을 먹여 키운 돼지는 제주토종 재래돼지로 흑돼지였다. 하지만 흑돼지 사육이 산업화되면서 제주토종돼지는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설자리를 잃게 됐다.

현재 우리가 식당에서 먹는 흑돼지는 1930년대 수입된 외국종인 버크셔와 교잡된 것으로 토종돼지와는 다르다.

제주토종흑돼지는 보통 5~8마리 새끼를 낳을 수 있지만 외국산은 12마리까지 낳을 수 있고, 크기도 토종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교잡종이 제주양돈산업에 뿌리를 내기게 된 것이다.

여기에 새마을운동 등으로 제주전통가옥과 돗통시라 불리는 옛화장실이 현대식으로 바뀌면서 제주토종 흑돼지 즉 똥돼지의 개체수가 크게 감소했다.

제주지역에는 일부 농촌지역이나 성읍민속마을 등에 전통방식이 남아있을 뿐이며, 그것도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관광용으로 남겨둔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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