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에게 듣는 제주 옛집 이야기

취사·난방 분리...집 구조에도 서열 있어

하나둘 사라지는 제주의 옛집에는 '지혜'가 있다. 이제는 오랜 기록을 뒤지거나 아직 남아있는 공간을 살피는 것이 아니고는 알 수 없는 것들이다. 양성필 이카제주 건축사사무소 대표의 도움으로 '제주 옛집'을 탐색해봤다.

△ 날씨 거스르지 않는 삶

제주의 전통 가옥은 일반적으로 3칸집이다. 가운데에는 사회적 공간인 상방(마루)을 뒀고 상방의 한쪽에는 안채와 그 뒤로 고팡(창고)을, 다른 한켠에는 작은채 그 뒤로 정지(부엌)가 자리잡고 있다.

안채의 경우 난방을 하기 위해 불을 지피는 굴목(온돌)을 안채 바깥 좌측에 조성했고 작은채에는 우측이나 정지에 설치했다.

제주도는 지리적 특성상 강한 바람이 자주 불다 보니 굴묵에서 불을 지피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집 주위에 벽을 쌓아 올려 바람을 막았다.

양 대표는 "벽과 굴묵 사이에 작은 길목을 '굴목'이라고 부른다"며 "이는 제주의 전통 가옥이 가지고 있는 특징 중 하나"라고 말했다.

외지인에게 안채나 작은채를 빌려 줄 때 굴목도 겸해서 빌려줬다. 별도로 아궁이를 내는 대신 부엌으로 사용하라고 불씨를 내주는 일종의 나눔이다.

△취사와 난방 분리

제주 옛집은 취사와 난방이 분리된 형태를 하고 있다.

양 대표는 "제주는 겨울이 짧은데다 타 지역보다는 따뜻한 편이었다"며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난방을 하는 대신 이를 분리해 연료 소모를 줄였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난방시설도 타 지역과 다르다. 일반적으로 초가집은 방바닥 밑으로 '구들'을 만들어 방의 온도를 조절했다. 기본적인 구들의 구조는 방의 맨 안쪽인 아랫목 밑으로 구들장을 길게 깔고 방문과 가까운 웃목 밑으로 얇게 깐다. 여기에 땅을 파내 연기가 나가는 길목인 '고래'를 만들고 고래 중간 중간에 홈을 더 파내 재를 걸려내는 곳을 조성하고 굴뚝으로 연기를 내보냈다.

하지만 제주 전통 가옥에는 이런 구들은 없고 굴목만 확인된다. 

양 대표는 "많은 학자들의 이견이 있지만 이원진의 「탐라지(眈羅志)」에 기록된 내용으로 보면 대부분의 서민들의 집에서는 타 지역과 달리 연기가 나가는 길목인 고래나 굴뚝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 엄격했던 서열 구분

집의 큰 구조를 보면 앙끄레(안채의 제주어)와 바끄레(바같채의 제주어)를 두고 앙끄래의 서측면 벽쪽에는 도통(변소)이, 앙끄래와 바끄래 사이의 서측에 쇠막(외양간)이 자리잡고 있었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앙끄래(안채의 제주어)는 부모가, 바끄래(바같채의 제주어)는 아랫사람이 살도록 했다. 간혹 앙끄래와 아랫목을 같은 의미로 아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다르다.

앙끄래와 아랫목은 사회적 '위계'에 의한 위치적 의미를 공동으로 내포한다. 이중 아랫목에는 기술적 의미가 더해져 있다.

양 대표는 "옛집 구조를 보면 방 안에서부터 가장 작은 단위에 사회적 위계가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며 "지금은 그런 것을 책으로 가르쳐야 한다. 선조의 지혜는 그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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