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을 이어온 제주밭담

송인혁 '월정리 밭으로 가는 돌담길'.

돌 이용 농사용 바람막이로 사용
경계 확실히 해 권세가 횡포 막아

탐라국 시대부터 1000년의 역사
제주만의 독특한 미적 가치 간직

제주의 돌담, 그중에서도 밭담은 제주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문화요소로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제주의 경관이다. 화산섬이라는 독특한 자연환경에 적응해온 제주인들의 삶의 지혜가 스며든 밭담은 그 자체로 '제주다움'을 상징한다.

제주의 밭담은 네모 반듯한 육지부 논·밭과 달리 퍼즐조각처럼 아기자기한 밭의 경계를 따라 구불구불 휘돌면서 질서 없고 허술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나름의 규칙과 기능이 숨어있는 것도 매력이다.

왜 쌓았을까

제주 밭담의 유래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정리된 것은 없다. 다만 부분적으로 기록이 남아 있어 생성과정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제주연구원 제주밭담6차산업화사업 기반구축사업단은 밭담의 시원에 대해 농사용 바람막이, 방목문화의 영향, 토지 경계표시 등 3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번째로 제주밭담은 바람 많은 제주에서 화산섬의 무수한 돌 자원을 활용해 농사용 바람막이로 쌓았다는 의견이다.

초지를 개간하면서 쏟아지는 돌들을 멀리 옮기기보다 주변에 쌓는 편이 쉬웠다. 강한 바람은 돌담 틈을 지나며 순풍이 되고, 흙과 씨앗이 날리는 것과 농작물의 피해를 줄이게 된다. 이런 밭담의 방풍 기능은 「증보탐라지」에 언급됐다. 

제주는 경작지 대부분이 비옥함과 거리가 멀다보니 많은 밭이 필요했던 것도 한 이유였다. 한 번 경작하고 나면 지력을 북돋기 위해 휴경이 필요했고, 자연스럽게 다른 초지를 개간해 밭담을 만들게 됐다는 설명이다.

두번째 이유는 마을 가까이서 말과 소를 방목하는 제주 특유의  정주형 방목문화에 따른 영향이다.

초지를 따라 유목하는 대신 일정한 마을에 거주하면서 농경과 목축을 동시에 하는 특이한 생활형태 때문에 말이나 소가 밭으로 들어가 농작물을 뜯어먹는 일을 막기 위해 밭담을 쌓았다는 것이다.

이는 조선시대 제주목사 이원조의 「탐라지초본」에 '반드시 돌을 모아 담을 두른다. 이는 우마를 막기 위함이다'라는 기록으로 엿볼 수 있다. 이증의 「남사일록」에는 1679년 '밭 끝 사방에 주먹만한 돌들을 둘러쌓아 소뫄 말이 함부로 들어올까 보아 막고 있다'는 대목도 나온다.
세번째는 토지의 경계 표시 역할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고려 고종때인 1234년 권세가들의 횡포를 막기 위해 제주판관 김구(金坵)가 밭의 경계를 따라 돌담을 쌓게 했다고 기록돼 있다. 

당시 권세가들이 힘없는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는 일이 많다보니 경계를 확실히 해서 횡포를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농작법이 발달하면서 경계 표시가 시작됐다는 설명도 있다. 한 번 갈아먹고 나면 방치하는 휴경(休耕) 농작법일 때는 굳이 경계를 표시할 이유가 없었지만 1~2년 또는 3~5년 주기로 다시 농사를 짓는 휴한(休閑) 농작법으로 바뀌면서 밭담을 쌓게 됐다는 설명이다

제주 밭담 나이는

여러 이유가 모두 타당해 보인다. 하나 하나의 이유들이 모여서 지금의 밭담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면 밭담은 언제부터 쌓았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밭 전체를 돌담으로 두르는 일은 쉽지 않은 작업임이 분명하며, 강력한 요구가 없다면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때문에 밭담을 쌓기 시작한 연대를 추정할 때는 주로 농업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제주의 농업에서 가장 큰 적은 역시 바람이었다. 한반도 최남단 제주는 농작물의 생육에 큰 지장을 주는 초속 10m 이상의 바람이 잦기 때문에 농사에서도 강한 바람에 대비하는 일이 최우선이었다.

제주 섬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한 시기가 탐라국 시대인 기원이 기원후 1년에서 1105년 사이로 추정된다. 선사유적지 출토 유물로 보면 탐라시대 초기 물을 구하기 쉬운 해안지역에서 농경과 어로활동이 시작됐고, 이후 인구가 늘면서 내륙으로 농지와 취락이 확대된다. 

해안의 밭은 비교적 비옥한 반면 해안에서 멀어질수록 화산회토로 토질이 떨어져 이 시기 어느 쯤부터 밭담을 쌓았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다.

즉 제주밭담의 나이는 족히 1000년 가량은 되는 셈이다.

제주밭담은 그 기나긴 세월을 묵묵히 버티며 제주 사람들의 먹을거리 생산에 도움을 주고, 이제는 타 지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미적 가치를 선물하고 있다. 제주 사람들의 오랜 삶의 역사에서 만들어진 실용의 아름다움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검은 밭담은 제주의 푸른 바다와 노란 유채꽃밭, 보리밭의 초록 물결과 어울려 하나의 거대한 예술작품을 방불케 한다. 절해고도의 척박함을 극복한 제주밭담이 제주의 문화 자산으로 주목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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