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 설 차례상 변천사

정화수에서 피자까지 올려
갑오개혁때부터 격식 차려

한 때 '이래도 되나'하는 쓴소리와 함께 전해지던 차례상에 햄버거에 피자, 케이크를 올렸다는 명절 뉴스는 이젠 별 재미가 없다.

오히려 언제부터 설 차례를 지냈고 그 기준은 무엇인지가 궁금증을 유발한다.

관련 자료를 뒤져보면 과거 차례상에는 지금처럼 많은 제수를 올리지 않았다. 간단하게 예를 올리는 것이 보편적이었고 제수의 수량 역시 정해진 것이 없었다. 살림이 넉넉지 않은 집에서는 정화수 한 그릇 만을 올려 차례를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 율곡 이이가 「격몽요결」에서 제례를 설명하기는 하지만 그 역시 지금과는 사뭇 내용이 다르다. 상에 올리는 음식의 종류나 방향이 아니라 '제를 올리는 자의 정성', 즉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지금처럼 격식을 차리게 된 것은 갑오개혁 때로 추정된다. 신분제가 폐지되는 등의 변화 속에서 일부 우월성을 유지하고 싶은 양반들이 차례상에 신경을 썼다는 해석이 있다. 일제강점기와 새마을운동 등을 거치며 한때 1년 31회에 달하던 차례가 설·추석 두 번으로 줄었다. 대신 더 정성을 기울인다는 것이 가짓수를 늘렸다는 분석도 있다.

여기에 핵가족화와 도시 이주 등의 사회 변화와 차례상차리기 등 가정의례를 소개하는 언론보도와 지침서 등에서 특정 지역, 특정 가문의 상차림을 알리며 일반화됐다는 해석도 있다.

차례상은 가가례(家家禮)라고 한다. 집집마다 다르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가문의 전통과 가풍에 따라 다를 수 있는 만큼 기본적인 것은 지키되 달리해도 된다는 의미다. 무엇을 올리던 차례의 의미만 분명히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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