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 살해 혐의 한정민 14일 천안서 숨진채 발견
사건 정황 포착해도 용의자 신변 확보 미흡 드러나

20대 여성 관광객 살해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도주 닷새 만에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총체적 부실을 여실히 드러냈다.

제주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8일 제주시 구좌읍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투숙객 A씨(26·여·울산)를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정민(32)이 14일 충남 천안시의 한 모텔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해당 모텔 주인은 이날 오후 3시께 퇴실 시간이 지났음에도 한씨가 나오지 않는 점을 이상하게 여겨 객실 내부를 확인했으며, 이 과정에서 목을 맨 채 숨진 한씨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용의자의 사망으로 해당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경찰은 초동 수사 미흡 등 부실 수사를 여지없이 노출했다.

실제 경찰은 A씨가 타살 등 사건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황을 포착하고도 실종 직전 술자리를 함께 했던 한씨 등을 용의선상에 올리지 않았다.

경찰은 10일 오후 4시50분께 해당 게스트하우스 인근에서 피해자의 차량을 발견했으며, 이와 관련해 참고인들을 조사하기 위해 이날 오후 7시께 한씨와 통화했다. 당시 한씨는 "지금 탑동에 있어서 밤 10시에서 11시 사이에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겠다"고 답변했다.

이후 경찰은 이날 오후 7시10분께 한씨가 피해자의 차량으로 추정되는 승용차를 이용해 게스트하우스 인근 편의점에 들리는 모습을 CCTV 조사를 통해 확인했다.

직후 경찰은 범죄사실을 조회해 한씨가 지난해 12월 준강간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러나 경찰은 한씨가 실종 신고된 여성의 차량을 운전하고 성범죄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사실까지 확인하고도 한씨의 "돌아가겠다"라는 말만 믿고 이날 오후 11시까지 아무런 조치 없이 해당 게스트하우스에서 기다렸다.

이 사이 한씨는 이날 오후 8시30분께 항공편을 통해 유유히 제주에서 빠져나간 후 잠적했으며, 경찰은 한씨의 도주 사실마저 다음날인 11일 새벽 1시30분에야 확인했다.

경찰이 A씨의 시신을 발견한 시점도 초동 수사 미흡을 방증하고 있다.

경찰은 10일 오전 10시45분께 실종 신고가 접수, 2시간 30여분만인 오후 1시10분께 현장을 방문해 수사를 벌였지만 바로 옆 폐가에 있던 A씨의 시신은 발견하지 못했다.

이외에도 한씨가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게스트하우스 창고에 숨겼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A씨의 유류품도 11일에야 발견했다.

사건 가능성을 증명하는 정황들을 포착해도 한씨에게 도주의 빌미를 제공한 점과 시신, 유류품 등을 뒤늦게 발견한 점을 고려하면 14일 브리핑을 통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했다"는 경찰의 해명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고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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