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도

고동지 설화 등에 이어도 기록돼...해녀들 염원 담고 있어
'또 하나의 제주섬, 이어도' 등 현대 대중문화에 영감 줘

힘들고 고달픈 현실을 잊고 살아도 되는 '그 곳'. 제주인의 영원한 이상향이자 피안의 섬. 바로 이어도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 쯤 어딘가에 있는 이어도는 외부세계로 나가는 길목이었지만 그곳은 수중 암초였기 때문에 배가 난파하는 사례가 빈번했고, 뱃사람들이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으면 제주사람들은 '이어도로 갔다'고 믿었다. 이어도는 또 거친 바다와 가난, 수탈에 맞서 힘겹게 싸우는 제주인에게 이상향이자 마음의 고향이었다.

# 강남가는 길 반쯤 '이어도' 전설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이엿사나 이여도사나/우리 배는 잘도 간다/솔솔 가는 건 소나무 배여 잘잘 가는 건 잡나무 배여/어서 가자 어서 어서 목적지에 들여 나가자/우리 인생 한번 죽어지면 다시 전생 못하나니라"

제주해녀들이 배를 저어가며 바다로 나갈 때 불렀던 구전민요인 '이어도 타령'은 힘차게 노를 저으며 '이엿사나 이여도사나'로 시작한다.

해녀들의 한과 그리움, 이별이 없는 영원한 이상향에 대한 바다 여인들의 염원은 담은 이 해녀 노래에 등장하는 이어도는 예나 지금이나 제주인들 사이에서 수많은 전설과 이야기를 낳았다.
사단법인 이어도연구회에 따르면 한 일본 학자가 모슬포 지역에서 채록한 설화에 제주 사람들이 이어도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설화는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고려 충렬왕 3년에 공물선을 타는 뱃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공물을 가득 실은 큰 배는 모슬포에서 출항해 중국의 강남을 향해 황해를 오갔지만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정에 살았던 공물선의 선주 강씨도 어느 해인가 돌아오지 못했고, 그의 늙은 부인이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아아 이허도야 이허도"로 시작해서 마치는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노래는 매우 서글프고 애처로웠다. 

당시 섬사람들 사이에서는 항로 중간에 '이여도'라는 섬이 있다는 꿈같은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이에 강씨의 부인은 노래를 통해 남편이 하다못해 이여도까지만이라도 도착하기를 기원한 것이다. 비슷한 처지의 부인네들에게 공감을 얻으면서 이 노래는 섬 안으로 널리 퍼지게 됐다.
이어도를 과부들의 섬으로 그린 이야기도 있다. 조천리에 내려오는 '고동지 설화'(채록 진성기)다.

옛날 조천리에는 고동지라는 사내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해 조천포구에서 중국으로 국마 진상을 가던 중 갑자기 폭풍을 만나 동료를 모두 잃고 표류하다가 한 섬에 도착했다. 그 섬의 이름은 '이어도'로, 태풍에 어부들이 죽어나가는 바람에 과부들만 남은 섬이었다.

고동지는 과부들에게 대단한 환영을 받으면서 날이면 날마다 초대를 받아 애정을 나눴다. 그러던 어느날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을 보면서 고향의 아내를 그리워하게 됐고, 이후 고동지는 수평선만 바라보며 슬퍼하다가 "이어도 호라 이어도 호라/이어 이어 이어도 호라/ 이어 말호민 나 눈물 난다/이어 말랑 말앙근 가라/강남을 갈거면 해남을 보라/이어도가 반이옝 해라"라는 노래를 불렀다. 강남 가는 중간 쯤에 이어도가 있으니 나를 불러달라는 애절한 내용이다.

그 후 고동지는 중국 상선을 만나 귀향했고, 이 때 함께온 이어도 여인이 '여돗할망'이라는 당신(堂伸)이 됐다는 이야기다.

덕판배

# 시·소설·음악…다양한 상상력 자극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어도는 현대 문학작품과 음악 등 대중문화에도 풍부한 영감을 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고 이청준 작가가 1974년 「자유문학」에 발표한 중편소설 「이어도」가 꼽힌다. 대한민국 정부 수로국이 파랑도의 위치파악에 나섰다가 실패한 사건을 소재로 삼은 소설로, 탐사에 동행한 제주 출신 기자가 바다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소설에서 이어도로 갔다고 믿었던 기자는 파도에 쓸려 제주 해안에 다다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소설 「이어도」는 김기영 영화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또 정한숙의 소설 「IYEU島」를 비롯해 많은 작가들이 이어도를 시, 소설 등 문학으로 그려냈다. 이어도연구회는 2009년 이어도 시 모음집인 「또 하나의 제주섬, 이어도」를 펴내기도 했다.
대중가요는 이어도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어도연구회에 따르면 2005년 가수 이상은의 12집 앨범에 실린 '이어도'는 낭만적인 사랑이 충만한 유토피아로 이어도를 그렸고, 1992년 가수 한영애의 3집 앨범에 실린 '이어도'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픈 심정을 구슬프게 담아냈다.

정태춘의 가곡 '떠나가는 배-이어도'는 제주 출신 양중해 시인의 시에 노래를 입힌 곡이다. 

이 시는 한국전쟁으로 제주에 피난왔던 이들이 고향을 찾아 떠나가면서 이들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것으로 돼 있지만 "…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저 평화의 땅을 찾아/강남길로 해남길로 바람에 돛을 맡겨/물결 너머로 어둠 속으로 저기 멀리 떠나가는 배"라는 시어를 보면 이들의 고향길은 이어도로 가는 길과 다르지 않다.

고단한 피난살이를 마치고 근심 걱정 없는 이상향 이어도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승질 저승질 갓닥 오랏닥 숨 그차지는 숨비소리/좀녀 눈물이 바당물 되언 우리 어멍도 바당물 먹언/나도 낳곡 성도 나신가/아방에 아방에 아방덜 어멍에 어멍에 어멍덜/이어도 가젠 살고나 지고 제주 사름덜 살앙 죽엉/가고저 허는게 이어도 우다/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이어도사나"

비교적 최근인 2013년 12월에는 구수한 제주어 노래로 유명한 '영원한 삼춘가수' 양정원씨가 4집 '모다들엉'을 발표하면서 이어도 노래인 '이어도 사나'를 불렀다.

흥겨운 후렴구나 멜로디와 달리 내용은 배 타고 바다에 나가 목숨 걸고 잠수하던 바다 여인들의 애환과 그런 어머니들을 바라보는 자식들의 마음을 그려내 가볍지만은 않다. 특히 제주사람들이 '살아서 죽어서 가고자 하는게 이어도'라는 가사는 제주인의 '이어도 정서'를 압축해서 보여준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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