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서 불어오는 봄내음

시린 겨울의 시련 이겨내 개화
유채 2월 시작...4월초엔 절정
한반도서 가장 먼저 소식전해

봄을 따라 네가 온다. 노란 볕 조각이 메마른 나뭇가지에 툭 내려앉으면 네가 다시 돌아온다. 수줍은 듯 붉어진 얼굴로 손 흔들며 인사한다. 너의 향기에 취한 벌들은 온종일 윙윙 주변을 맴돌겠지. 고운 네 자태에 반한 대지는 푸른 잔디를 치열히 키워내겠지. 그러니 너는 이곳에 조금만 오래 머물러라. 너를 따라 봄이 왔으니. 네가 있는 이곳은 영원한 봄일테니.

△ 언제 어디서 봄꽃은 태어나

남쪽의 섬에서 봄은 시작된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봄꽃의 이야기는 뭍으로 가 한반도를 오색빛깔로 물들인다. 

식물은 계절의 변화를 인지하고, 최적의 조건이 갖춰졌을 때 꽃을 피우는 정교한 메커니즘을 갖는다. 개화는 기온과 낮의 길이에 따라 결정된다. 낮이 길어지는 봄에는 개나리와 진달래 같은 장일식물이 꽃을 피운다. 낮이 짧아질 때 피는 단일식물은 가을꽆인 코스모스나 국화가 있다.

봄꽃은 오랜 기간의 저온 환경을 겪어야 핀다. 즉 겨울의 낮은 기온을 거쳐야 꽃을 피울 준비가 완성되는 셈이다. 식물 내에는 꽃이 피는 것을 억제하는 유전자가 있어 평소에는 꽃피는 것을 막고 있다가 장기간의 저온상태를 거치면서 이 유전자의 활동이 약해져 꽃을 피운다.

옛 사람들은 봄에 꽃이 피는 순서를 '춘서(春序)'라고 했다. 하얀 눈 속에 피는 동백과 매화를 시작으로 목련과 개나리, 진달래, 벚꽃, 철쭉 순으로 차례차례 꽃을 피웠다. 요즘은 전 지구적인 온난화와 국지적인 도시화로 봄꽃의 생체시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잦아지는 추세다.

제주의 봄꽃은 3월말 만개한다. 유채는 2월 말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해 4월 초에 절정에 다다른다. 개나리는 벌써 수줍게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진달래는 19일 서귀포에서 피기 시작해 열흘 뒤 서울까지 분홍빛 물결로 물들일 전망이다. 벚꽃은 오는 24일부터 서귀포에서 개화하기 시작해 4월 1일을 전후로 절정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 알록달록 예쁘게 피었구나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 제주는 지금 유채(油菜)꽃 노란 물결이 넘실거린다. 제주 유채꽃은 푸른 바다, 검은 돌담, 노란 유채 등 이 세 가지의 어우러짐을 감상하는 것이 포인트다. 제주에서 유채를 환금작물(換金作物)로 다량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다. 유채를 심어 팔기도 하고, 벌꿀을 생산하는 데 이용하거나 기름을 짜서 먹기도 했다. 요즘은 경관 작목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매화는 추운 겨울에 홀로 피어 봄이 올 때까지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격조 높은 꽃으로 사랑받았다. 유교에서는 겨울에 모진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운다 하여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 정신의 표상으로 삼았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매화 감상법까지 따로 두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매화 향기는 고요한 분위기에서 '귀로 음미한다'고 해서 '귀로 듣는 향기'로 불린다. 

샛노란 색깔처럼 '희망·기대'의 꽃말을 가진 개나리는 연교·신리화라고도 한다. 꽃과 나무의 모양이 아름답고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기 때문에 관상수로 널리 쓰여 공원과 길가에서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린다. 개나리의 나리는 백합을 뜻하는 순 우리말에서 비롯된 것인데, 개나리가 백합보다는 아름답지 않고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라 해서 '개'자를 붙여 개나리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개나리꽃으로 담근 술을 개나리주라 하고, 햇볕에 말린 열매를 술에 담가 저장한 것을 연교주라 한다.

제주 벚꽃은 유달리 크고 탐스럽다. 제주 지역은 왕벚꽃의 자생지로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벚꽃 소식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피어 있는 모습 못지않게 떨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꽃잎이 유독 얇고 하나하나 흩날리듯 떨어져 꽃비가 내리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또 금세 활짝 피어 화려하게 물드나 싶다가 봄비가 내리면 잎만 푸르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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