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두텁고 부드러워 예부터 인기…임금님에 진상도
'산에서 나는 소고기'…강인한 생명력 지닌 식물

4월에 들어서자 약속이나 한 듯 중산간 들녘으로 발길을 옮긴다. 삼삼오오 짝을 이뤄 허리를 숙인 채 무언가를 찾는데 여념이 없다. 바로 제주의 보물인 '고사리'다.

고사리는 태동하는 강인한 생명령의 상징이다. 아득한 고생대부터 지구에 존재했던 고사리는 남극대륙이나 사막과 같이 너무 춥거나 더운 지방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볼 수 있다. 음지이거나 건조한 곳, 습지 등 생육환경이 불량한 곳에서도 잘 자라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난 식물이다.

고사리의 어린 순은 새롭게 피어나는 생명의 기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전문>

약용·식용 인기

'산에서 나는 소고기'라 불리는 고사리는 예로부터 약용과 식용으로 인기가 많았으며, 제사상, 비빔밥 등에 빠지지 않는 인기 식품이다. 고사리는 단백질과 칼슘, 철분, 무기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머리와 혈액을 맑게 해주고 음기를 보충해 열독을 풀고 이뇨작용을 원활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

중국의 춘추시대에 백이(伯夷)·숙제(叔齊)가 고사리를 먹고 연명하였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다. 진·한 시대의 사전인 「이아 爾雅」에서도 고사리를 궐(蕨)로 표기하고 나물의 하나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고사리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 고사리는 제사음식에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다. 「본초강목」에서는 "고사리는 음력 2, 3월에 싹이 나 어린이의 주먹모양과 같은데, 펴지면 봉황새의 꼬리와 같다"고 했다.

고사리는 섬유질이 많고, 캐로틴과 비타민C를 약간 함유하고 있으며, 비타민B2는 날것 100g에 0.3㎎ 정도 함유하고 있다. 뿌리 100g에는 칼슘이 592㎎이나 함유돼 있어서 칼슘식품이 적은 산촌에서 좋은 산채라 할 수 있다.

4월 하순에서 5월 상순 사이에 어린 고사리를 따서 나뭇재를 섞어두고 여기에 뜨거운 물을 붓거나, 뜨거운 물로 고사리를 삶고 나뭇재를 섞어 식기를 기다린다. 그러면 비타민B1 분해효소가 파괴되고 쓴 맛도 빠져나온다. 요즈음은 나뭇재 대신 소금과 중조를 쓴다. 「본초강목」에서도 어린 고사리를 회탕(灰湯)으로 삶아 물을 버리고 햇볕에 말려 나물을 만든다고 하였다.

제주와 고사리

우리나라에는 360여종에 달하는 고사리가 들판에서 자생하고 있는데 '가는쇠고라리''일색고사리''선바위고사리' 등 약 80% 정도가 제주도의 들판에서 볼 수 있다. 특시 제주고사리삼은 세계적으로 제주에만 자생하는 희귀식물이다. 제주산 고사리는 '궐채'라고 불리며 임금님에 진상했다.

한라산의 청정한 기운을 담뿍 머금은 제주산 고사리는 살이 두텁고 부드럽고 맛이 좋은데다 누구나 손쉽게 꺾을 수 있다. 

다만 한철 나는 것들이니 만큼 요령껏 보관해야 한다. 오래 두지 않고 먹을 요량이면 삶아서 먹을 만큼씩 나눠 냉동실에 보관하면 된다. 오래 보관할 게획이면 삶아서 잘 말린 후 그늘지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보관해야 한다. 

일단 고사리를 삶기 전 끄트머리에 동그랗게 말려있는 잎을 털어내야 텁텁한 맛이 없다. 말린 고사리는 물에 잘 불려서 원하는 형태로 조리해 먹으면 된다. 

제주에서 '고사리'는 제주 특유의 정체성과 연결된다. 한 달여 공을 들여 채취한 고사리를 스스럼없이 나누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고마운 마음에 건네는 것도 거리감 있는 현찰 대신 필요하거나 나눌 수 있는 것들이다. 섬이란 특수성과 더불어 외세의 견제 속에 먹고 살기 힘든 고비를 수차례 넘겼던 제주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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