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제주인의 지혜를 담다

차롱.

하루가 멀다고 새로운 것이 쏟아지는 시절이다. 잠깐 한눈이라도 팔라치면 이내 뒤쳐진다 싶어 조바심도 난다. '가능하면 새 것'에 손을 들어주는 지나칠 만큼 냉정한 진리들 속에 '오래될수록'이 가치가 되는 것들이 있다. 보물이나 문화재 같은 거창한 이름은 아예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다 어떤 것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 주변에서 봤던 것들이다. 제대로 쓰고 말짱하기만 하면 된다. 있어줘서 고마운 것들에는 털털한 사연과 남다른 감동이 있다.

△오래된것은 쓰기 불편하다?

생활유물 이야기다. 사람 사는 공간에서 적어도 몇 세대를 걸쳐 쓰였던 것들을 그 안에 들어있는 시간의 두께 때문이다. 분명히 낡은 것 속에는 시간의 격랑을 해쳐온 무언가가 있다. 줄잡아 몇 백년이 됐다는 고목이나 누군가의 흔적이 역력한 고택,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카리스마의 골동품들이 그러하다. 그것뿐일까. 오래 입은 옷은 낡은 만큼 주인의 마음이 포개져 부담 없고 또 편안하다. 장맛도 적당히 묵혀야 제 맛이 나고 포도주도 '오래다'는 기준으로 고급이 된다.

알면서도 오래된 것들을 새것으로 바꾸는 것은 편하기 위한 욕심에서 비롯된다. 솔직히 오래된 것은 낡은 것이고 낡은 것은 쓰기에 불편하다. 최신형일수록 사용하기 편한 뭔가가 옵션으로 달려있다.

낡은 것이라고 해서 불편한 것은 아닐 진데 새로운 것들과 비교해 불편해진다. 

새것을 원하는 '편의성'이라는 것이 수단에 이유를 부여한 것일 뿐 목적일 수는 없어서다. 아프게도 용도가 끝나면 가차 없이 폐기되는 것은 비단 생명이 없는 것들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부터 낡은 것과 늙은 것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간혹 고루하다는 말로 밀어낸다.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

정말 그러할까. 전부 다 그렇다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리움이나 추억 같은 단어를 연결하면 사정은 달라진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것들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물은 편리한 도구(수단가치)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가 목적(존재가치)의 존재가 된다. 그러기에 생활유물에는 값으로 매길 수 있는 뭔가가 있다. 

'잘 늙어'서 웬만한 사람보다 속 깊게 여긴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다. 하나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손때 사이로 언 듯 누군가의 얼굴이 보이고, 작은 쓰임 하나도 기억할 이유가 된다. 세월과 존재의 섭리 비슷한 것들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된다. 한껏 먼지를 뒤집어 써 건들기만 해도 쿨럭쿨럭 묵은 기침을 뱉어내건 오십견 온 어깨마냥 살짝 삐딱한 자세를 취하건 고집스레 몸을 비틀어 가끔 망령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느껴져도 한낱 '물건'이 아닌 한 때를 풍미했던 '어떤'이 가슴에 들어온다.

다시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이름을 가진다는 것은 그것이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것, 다시 말해서 하나의 존재자로서의 권리를 지니게 된다는 뜻이다.  늙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의 품위와 존중받아야 할 권리를 지닌다. 편리함이 부추긴 변화의 격랑 속에서 견디면서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당당한 이유가 충분하다.

허벅.

△생활유물에는 도채비가 있다

제주의 생활유물들에는 도채비가 따라붙는다.

밤에 느닷없이 나타나 사람들을 골탕먹이거나 씨름을 하자고 달려드는 장난꾼인 우리나라 전통 도깨비의 흔적이 비교적 오래 남아있는 데도 생활유물이 한 몫했다. 사람 사는 곳이면 어디든지 불쑥불쑥 나타나 빗자루며 요강으로 모습을 바꾸는 것은 별 것 아닌 재주에 들어간다.

"사람의 때가 묻은 물건에 염원이 깃들면 그 물건이 도깨비가 된다"는 말을 떠올려보면 생활유물의 의미를 다시 살필 수 있다.

제주에는 생각보다 숱한 도체비 이야기가 전해진다. 머리빗·빗자루·솥·사발·종지 같은 생활도구로 변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다른 곳도 아닌 생활유물이 있는 공간에서 등골이 오싹하거나 머리카락이 서는 느낌이 든다면 옆이나 뒤, 아니면 머리 위에서 도체비가 소리 죽여 웃고 있을 수 있다.

그 안에 담긴 생활의 지혜 역시 늙음에서 비로소 챙겨지는 것들이다. 돈만 쓰면 냉장 보관이 가능한 휴대 용기를 구할 수 있는 요즘 제주 한 마을이 꺼낸 '차롱 도시락'은 신선함과 그리움을 더해 입소문을 탄다.

대나무로 짜지만 높이가 얕고 뚜껑이 있으면 차롱이고, 그렇지 않으면 구덕이다. 먹을 것을 나누거나 보관하는 용도로 썼다. 차롱보다는 작은 크기의 휴대용 도시락인 '동고량'도 있었다. 불편한 금속성도 없고, 유해성분이 있을까 몇 번이고 씻고 닦기를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 좁은 틈 사이 바람이 오고가며 만든 맛은 어떤 것으로 흉내 낼 수 없다.
그러니 늙었다고 무시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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