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제주인3세이자 조선적 연극인인 김철의씨가 네 차례 입국 거부의 아픔을 딛고 제주땅을 밟는다.

재일제주인3세 조선적 연극인 김철의씨 제12회 평화인권마당극제 참가
신분상 경계인 설움 속 우리말 공연 고집 불구 2009년 이후 입국 거부
경제적 어려움 유닛 '하나 아리랑' 결성 극적 참가…제민일보 후원 진행

"나에게는 조국이 있다. 지켜야할 핏줄도 있다. 그러니 죽어 뼛조각이 되더라도 지금의 모습으로 제주 무대에 서겠다". 10여 년을 이리 외쳤던 그가 제주에 온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공연으로 할아버지의 고향을 찾겠다고 입국 신청을 냈던 지난 2009년 이후 네 차례나 거절당했던 재일제주인이자 조선적 연극인인 김철의씨(47)다.

그런 그가 오는 15일부터 17일까지 제주시탑동해변공연장 야외무대와 실내극장에서 열리는 제12회 4·3평화인권 마당극제 무대에 선다.

두 번째 입국 거부를 당했던 2010년 영상으로, 그리고 2014년에는 김지은 감독의 다큐 '항로'로 제주를 찾았다.

이번 직접 제주 땅을 밟게 된다는 사실에 '만감이 교차했다'는 그의 목소리는 오히려 담담했다. 김씨는 "거절도 반복되면 익숙해진다. 정권이 바뀌고 조금 기대는 했지만 이렇게 쉬울 줄 몰랐다"고 귀띔했다. 면담 같은 과정도 없었다. '허무했다'는 표현이 이해가 간다.

재일제주인 3세인 그가 기다린 시간은 10년 남짓이지만 2세대인 아버지 김인종 옹(78)까지 포함하면 80여년, 고향 제주는 가까이 하기에 너무 멀었다. '조선적'은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에서도 굴레였다. 아버지 김 옹은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고향 방문 기회를 끝내 포기했다. 북한 청진에 있는 할아버지·할머니·큰아버지 묘와 남아있는 가족들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지 못했다.

김씨는 "몇 번이고 설득했지만 '못 간다'고 하셨다. 그 때 부모를 따라가지 않은 선택에 대한 책임이라는 말씀을 이해한다"며 "지금도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에 가족을 돌볼 방법을 걱정한다"고 말했다.

하늘에도, 바다에도, 땅에도 보이지 않는 '국경'이 사람들에게만 있다는 사실은 아직 진행형이다.

김씨는 일본 배우들과 한국어로 연극을 하고 조선학교 등에서 아이들에게 한국어 발성을 가르치는 등 뿌리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이어왔다.

지금이야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는 재일한국인 4세가 나올 만큼 달라졌지만 김씨가 사회에 나올 때만 해도 공무원 시험을 보거나 대기업 입사를 할 때 늘 불편했다.

비교적 활동이 자유로운 무대에 서는 일도 녹록치 않았다. 처음에는 그가 가지고 있는 배경에 흥미를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은 그의 작품에 매력을 느껴 무대를 찾는 이들이 생길 만큼 여유가 생겼지만 여전히 힘들다.

재일제주인3세이자 조선적 연극인인 김철의씨가 네 차례 입국 거부의 아픔을 딛고 제주땅을 밟는다. 제12회 4.3평화인권마당극제 개막작인 유닛 하나 아리랑의 '호라이즌 마치' 연습장면

이번 제주 공연 역시 그가 이끌고 있는 극단 메이가 아닌 유닛 '하나 아리랑'이라는 소규모 공연팀으로 참가한다. 일본인과 조선학교 학생이 배우와 스태프로 참여한다. 일제 강점기 희망을 찾아 바다를 건넌 젊은이가 일본에서 겪는 사랑과 아픔, 좌절 등을 그린 '호라이즌 마치'를 공연한다. 일본어 대사와 한국어 자막을 쓸 예정이다.

평생의 꿈 하나를 이뤘지만 아직 남은 고민이 많다. 배우와 장비 이동은 물론 연습실 이용과 소극장 임대 비용 등을 모두 자비로 만들어야 한다.

올해 마당극제에 '제주4·3 70주년'과 '생명의 호흡 평화의 몸짓'이란 슬로건에 더해 '4·3은 말한다' '제주해녀' 등 사회적 관심 사각을 놓치지 않았던 제민일보(대표이사 사장 김영진)가 동행을 결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여러 역할 등 중에 제민일보는 이번 마당극제 기간 동안 김씨를 비롯한 재일제주인 극단과 조선학교 학생들의 무대를 응원하는 후원 사업을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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