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규 제주세관장

매년 6월 26일은 UN이 정한 '세계마약퇴치의 날'이다.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마약류는 약물사용에 대한 욕구가 강제적일 정도로 강하고, 사용약물의 양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금단현상 등이 나타나고, 개인에 한정되지 아니하고 사회에도 해를 끼치는 약물로 정의되어 있다. 마약류의 남용은 조기 사망, 에이즈(HIV), 간염, 결핵 등을 초래해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훼손하는 한편, 조직범죄, 불법 자금, 부패 및 테러와의 연계 등으로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한다. 세계마약보고서(World Drug Report 2017)에 따르면 2015년 전세계적으로 마약류의 남용으로 조기사망한 사람이 최소 19만명에 이르고 주사기로 마약을 투약하는 1200만명 가운데 여덟명 중에 한명(160만명)이 에이즈, 절반 이상(610만명)이 C형 간염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남용되는 마약류는 메트암페타민(속칭 필로폰 또는 히로뽕)이다. 지난 해 단속된 향정사범(1만1396명)이 전체 마약류 사범(1만4214명)의 80%를 넘는 점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필로폰은 1888년 일본 도쿄대 나가이 나가요시 교수가 한방에서 사용되던 마황(麻黃)으로부터 에페드린을 추출해 합성한 마약류다. 이후 1941년 대일본제약주식회사에서 '히로뽕'이란 상품명으로 판매하면서 군수공장 근로자 등을 대상으로 널리 사용됐다. 세계 2차대전 이후 일본에서 필로폰에 중독성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회문제화 되자, 일본 정부는 각성제단속법으로 이를 통제하게 됐으며 이에 따라 가까운 우리나라가 필로폰 생산기지화 되면서 국내에서도 '히로뽕' 시장이 형성됐다.

UNODC(유엔 마약범죄사무소)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1~2015) 일본의 연평균 필로폰 압수량은 533㎏으로 같은 기간 우리나라 압수량 37㎏의 13배를 넘는다. 인구를 감안하더라도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5배 이상 마약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필로폰은 이미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및 오세아니아에서 가장 많이 남용되는 마약류인 동시에 북미 서남아시아 및 유럽 일부 지역에서도 지속적인 시장 확장으로 관계 당국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필로폰이 맹위를 떨치는 배경에는 초국가적 조직범죄의 개입이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UN이 각 국의 세관 등 법 집행기관이 국제범죄조직에 의한 마약류 공급 차단에 역량을 집중해 달라고 주문하는 이유이다. 국제범죄조직은 목표 시장을 공략할 때 우선 다량의 마약류를 공급함으로써 저렴한 가격에 많은 사람들이 마약류에 중독되도록 만든다. 마약류는 한번 중독되면 중단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시장은 공급자 중심으로 전환된다. 특히 필로폰과 같은 합성마약은 재배과정이 필요한 헤로인이나 코카인과 달리 공급측면에서 지리적 제한이 없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시장이 계속 팽창하고 있다. 

과거에도 우리나라에 나이지리안 신디케이트 및 일본 야쿠자에 의한 마약류 대량 공급이 수차례 시도됐으며, 금년 들어서도 대만 삼합회에 의한 다량의 필로폰 밀반입 기도가 세관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5월말 현재 필로폰 압수량만 58㎏에 달한다. 과거 3년치 압수량에 달하는 양이다. 국내에서 제조되는 필로폰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공항만의 관세국경은 마약과의 전쟁에서 1차 저지선이자 마지막 보루이다. 관세국경을 통과한 마약류의 밀매를 차단하는 것은 마치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것처럼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국제범죄조직의 도전과 더불어 개방화 및 세계화의 진전과 다크넷(Darknet)과 같은 새로운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인해 마약류 밀매 경로 및 은닉 수법이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더욱이 최근 미국의 캘리포니아 등 8개 주에서 기호용 마리화나 판매가 합법화 되는 등 마약류 단속 여건은 시간이 더할수록 범죄조직 즉 공급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에 맞서 국내외 단속기관간의 긴밀한 공조와 새로운 과학수사 장비 및 수사기법의 도입이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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