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미술관 천국 오명 대신 지붕없는 생태문화관으로
자연유산·문화유산, 전설·신화 연결로 시너지 효과 극대
해녀·제주어 등 숨겨진 보물·명품 발굴·알리는 지혜 필요

제주를 흔히 박물관·미술관 천국이라고 한다. 인구 대비 박물관·미술관 등록 숫자가 전국에서 가장 많다는 점 때문이다. 이유는 이 것 말고도 더 있다. 관광지 특성으로 박물관·미술관이 많다는 것도 맞는 말이지만 제주는 있는 그대로도 하나의 박물관이다.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자연사와 민속이 어우러져 하나를 이룬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

△예르미타시 박물관이 부러워?
전세계인의 축구 축제라는 2018러시아월드컵의 흥분이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일찍 식었다. 그동안 툴툴 댔던 것이 미안할 만큼 심장 터질 듯한 감동 드라마를 찍은 까닭에 '러시아 월드컵'과 '한국'을 동시에 검색하면 '독일의 눈물'이라는 연관검색어를 만들었으니 충분히 만족할 일이다.

또 하나, 때마침 러시아순방길에 올랐던 문재인 대통령이 꼭 집어 들렀던 문화시설 중 하나인 예르미타시 박물관이 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대영박물관 등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국립박물관으로 역사와 소장품 규모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뭔가 아쉬운 것은 '러시아'로 정리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과거 힘을 앞세워 주변국을 침탈하는 과정에서 챙긴 전리품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명성에 걸맞게 전 세계 예술품을 골고루 소장한 것도 모자라 제정 러시아 황제의 거처였던 겨울 궁전과 네 개의 건물이 통로로 연결된 외형만으로도 충분히 주눅들만하다. 바로크 스타일의 기품 있는 박물관의 이름은 사실 프랑스어에서 유래했다.

'에르미타시'(은둔지, 인적이 없는 방)이다. 아픔도 있었다. 니콜라이 1세 때는 1000점이 넘는 작품이 경매에 나오기도 했고, 사회주의 혁명 당시에는 임시정부 회의장소로 쓰였다.

심지어 수도가 모스크바로 옮겨지는 과정에서는 수집품 중 상당수를 모스크바 국립표현박물관에 내줘야 했다. 그럼에도 이곳에는 현재 1020여 개의 방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루빈슨, 피카소, 고갱, 고흐, 르느와르 등의 명화와 이탈리아 등지에서 들여온 조각품들, 이집트의 미라부터 현대의 병기에 이르는 고고학적 유물, 화폐와 메달, 장신구, 의상 등 300만 점의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다. 러시아 외에도 이집트, 그리스, 로마, 페르시아, 터키, 인도, 중국, 비잔틴, 일본 등 세계의 고대 유물과 예술품이 많이 전시돼 있다.

선사시대 유물.

△4면이 해양생태관…따라와봐
제주라는 박물관도 이와 비교해 손색이 없다. 오히려 더 크고, 더 화려하고, 더 풍성하다. 자연사만 놓고 본다고 해도 화산섬이란 특징으로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지질공원 등 세 분야에 이름을 올렸다. 제주 땅에 발을 딛고 걸어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자연사관을 도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가 있다. 심지어 4면에 해양생태관을 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역사도 빠지지 않는다. 신화·전설은 일단 접어두고라도 서기 200년부터 1105년까지 1000여년간 제주에 존재했던 고대 정치체 '탐라(耽羅)'는 대외 교역으로 해양 영토를 확장했던 신선한 생명력을 품고 있다.

증거도 있다. 탐라 중심 마을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제주시 용담동 마을유적(사적 제522호)과 용담동 무덤유적에는 우리나라 남해안지역을 포함한 주변 지역과의 대외교역으로 들어온 각종 금속품, 회색토기, 장식품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바다 건너 중국, 일본 등과 교역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는 기록도 있다. 항해술이 북유럽 바이킹들만의 몫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별을 읽을 줄 알았고 수렵에서 농경으로 문화 전이를 이뤘던 과정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곳이 과연 몇 곳이나 될까. 

탐라국 탄생역사의 시작과 중심에 있는 '혈(穴)'이라는 공간, 거석 문화라는 연결고리 등은 제주를 박물관으로 읽기에 충분한 요건들이다. 신화의 현장들이 생경하게 남아있음은 그리스·로마신화와 견줘 밀리지 않는다.

제주해녀, 제주어 등 제주에서만 찾을 수 있는 보석이나 명품도 수두룩하다. 이정도면 세계 5대 박물관의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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