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스토리 / 현행복 제주도문화예술진흥원장

"배우기를 좋아하고 게으르지 아니했다. 학문이 높고 업적이 많으며, 테너 성악가이면서 허벅에 장단 치며 제주민요를 즐겨 부르곤 했다. 만경창파 아득한 속에 멀리 있는 그 사람이 누구인가"

김순택 전 세종의원장이 장문의 영찬(影讚) 글을 올린 대상은 현행복 제주도문화예술진흥원장이다.

현행복 원장이 걸어온 길은 성악가, 민요연구자, 한학자, 행정가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있지만 요약하자면 김순택 전 원장의 말처럼 "배우기를 좋아했다"가 될 것이다.

현 원장은 1981년 제주대 사범대학 음악교육과 1기를 수석 입학·졸업하고 이후 10년간 영남대와 제주대 등에서 음악이론과 실기를 가르치며, 전국의 무대에서 공연해왔다.

1990년대 들어서는 "자연속에서 펼치는 예술이야말로 자연의 신비와 인간의 역사, 예술의 조화를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새로운 시도에 나서기 시작했다.

1997년 동굴음악회를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열악한 연습실 사정에 우연히 답사했던 동굴이 떠올랐다. 무엇보다 소리의 울림이 좋았다. 5년간 틈틈이 개발되지 않은 동굴 20여곳을 찾아다니며 때로는 수직동굴에 빠지기도 하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마침내 우도 해식동굴을 만나 '아 여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여인들이 노래를 부를 때 타악기처럼 변통해 썼던 물허벅 장단에도 주목해 동굴과 접목시켰다. 왼손으로 물허벅의 부리를 치고, 오른손으로는 놋숟가락으로 불룩한 부분을 쳐서 훌륭한 리듬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잊혀진 우리의 장단을 되살렸다.

2년 뒤에는 옛 선비들이 밤 뱃놀이하며 풍류를 즐겼던 '용연'에 눈을 돌려 용연선상음악회를 제안했고, 2004년에는 신선들이 방문했다는 방선문에서 계곡음악회를 열어 현재의 방선문축제로 이어지고 있다.

성악가(테너)이면서 민요 채록과 다수의 음반작업 등 제주민요 현대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점도 그의 특이한 내력이다.

현 원장은 "일반인들이 누구나 제주민요를 쉽게 부를 수 있게 보편화하고 싶었다. 20여곡을 채록해 악보집을 만들었고, 특히 배비장전을 모태로 한 제주소리가무악극 '제주기 애랑' 음악을 모두 제주민요로 입힌 점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제주의 향토와 탐라문화에 대한 관심은 10권에 이르는 저술활동으로 이어졌다.

「한국오페라에서 동굴음악까지 악(樂)·관(觀)·심(深)」 「방선문」 「취병담」 「탐라직방설」 「우도가」 「영해창수록」 「귤록」 등에 이어 최근 유배문학을 다룬 「청용만고」까지 제주와 예술에 대한 연구결과들을 담아냈다.

현 원장은 또 제주문화예술진흥원 최초로 공무원 출신이 아닌 개방형직위로 원장에 임명돼 화제가 됐다.

그는 "지난 1년간 개인 활동을 접고 문화행정에 전념했다. 연륜있는 공무원 출신에 비해 조직을 아우르는데 시간이 필요했지만 문화행사 등에 전문가로서 판단이 빠른 점은 장점으로 작용하더라"며 "'복숭아나 오얏은 말을 하지 않지만 그 밑에는 절로 길이 난다'(桃李不言 下自成蹊, 사기열전)는 말처럼 외양보다 내실을 다져 후배들에게 마중물의 역할을 하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현 원장은 이어 "도립예술단의 특징을 잘 살리기 위해 제주도문예회관·제주아트센터·서귀포예술의전당 등 전용극장에 안착하고, 진흥원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지속적으로 제안하고 있다"며 "도민과 함께 예술의 즐거움을 공유하고 서비스한다는 '여민락'(與民樂)의 마음가짐으로 주어진 임무를 보람있게 마치고 싶다"고 밝혔다. 김봉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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