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목장 말사육 최적지
고려말 공물 탐라목장 운영
제주마 700년간 혈통 이어와
목축 주체 테우리 계승 시급

제주선조들은 한라산 중산간(해발 200~600m)에 펼쳐진 드넓은 초지를 이용해 소와 말을 기르며 다양한 목축문화를 만들었다. 

제주의 중산간 지대는 초지와 오름, 하천, 용암평원이 발달하고, 맹수가 없는데다 겨울철에도 온화해 말사육의 최적지였다.

제주마(馬)를 대표하는 것은 조랑말이다. 조랑말은 달릴 때도 수평을 유지하며 '조로모로' 주법을 행하는 말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이어오고 있다.

제주마는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 한다. 제주도에 설치된 최초의 목장은 몽골이 1276년에 설치했던 탐라목장으로 100년간 운영됐다. 조랑말은 몽골이 '탐라목장'을 운영할 때 제주도로 보낸 말품종 중 하나다. 

조랑말은 성질이 온순하고 발굽이 강해 질병에 대한 저향력이 강한 반면 체구가 작다. 

제주마는 털의 색에 따라 가라말(검정말), 적다말(붉은말), 총마(회색말), 부루(점막이말) 등의 이름이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1388년 위화도 회군 당시 제주마를 타고 개성으로 입성을 했다. 이성계가 탄 말은 팔준마의 하나였던 응상백으로 가을철 서리처럼 흰 순백색의 말을 의미한다.

고려말 제주에서 태어나 자란 응상백이 이성계 장군의 군마로 공급돼 조선건국 당시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왕이 추진한 국책사업으로 제주 중산간 지대에 국마장이 설치되기도 했다.

제주마는 몽골에 의해 처음 사육된 이후에 700년간 혈통을 이어오고 있다. 현대 들어 제주특별자치도와 문화재청은 제주마의 순수혈통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다.

조선시대 제주마는 가치를 인정받아 중앙정부에 공급됐을 뿐만아니라 전국 각지에 설치된 군영과 목장에 분양됐다. 결국 조선시대 사육된 말의 뿌리는 제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주마는 중앙정부는 물론 원과 명의 왕조 시기에 중국대륙에도 공급됐다.

조선후기에는 국마장이 10개로 통합돼 십소장으로 불렸으며, 헌마공신 김만일과 그 후손들이 국가에 바친 말들을 따로 모아 운영했던 삼마장도 있었다.

제주말 역사 기록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다. 조선 숙종 당시 제주명자수군절제사 겸 제주목사로 부임한 이형상이 남긴 기록화첩으로 300여년 전 관내 방어실태를 점검하고, 인민의 풍속을 살피는 '순력'을 위주로 만들어졌다.

탐라순력도는 조선시대 국마의 보고였던 제주를 이해하는데 매우 의미있는 자료다. 당시 제주의 모습을 그린 지도 '한라장촉', 진상에 필요한 말을 점검하는 '공마봉진(貢馬封進)', 중산간 산마장에 키우는 산마의 마필수를 확인하는 '산장구마(山場駒馬)' 등이 그것이다.

한라장촉은 중산간 일대에 있는 목장의 이름과 경계 구역 등을 그림으로 표시했고, 공마봉진은 매년 6월 7일 관덕정 앞에서 실시하는 말들을 확인하는 행사이며, 산장구마는 10월 15일  구마군들이 말을 몰아넣는 의식으로 탐라순력도에서는 제주말 문화와 관련된 사항을 그림으로 담아낸 것이다.

제주의 독특한 말문화를 창출한 주체들은 테우리다. 목축 전문가 집단인 테우리들은 말문화를 기억하는 목축민들로 현재 고령화 등으로 계승이 어려운 상황이다. 제주의 말문화는 멀지 않아 소멸될 위기에 처해 있어 보존이 필요하다. 김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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