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억새

산굼부리 억새(제주관광공사 제공).

찬바람 불면 억새 절정…본연의 은색에서 여명·노을 따라 매력 발산
바람에 흔들리며 흥겹고 격렬한 춤사위…멀리서 바라보면 '은빛바다'

가을 제주에서 억새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는 마치 우리에게 손짓하듯이 흐느적거린다. 시기와 시간마다 다양한 색(色)으로 바뀌며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제주 억새는 9월부터 피기 시작해 11월에 절정을 이루고 이듬해 봄이 되면 진다. 제주억새는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억새를 만날 수 있는 자리는 중산간 등 도로변일 수 있고, 드넓게 펼쳐진 들판일 수도 있다. 또한 도내 주요 오름은 억새로 뒤덮혀 장관을 이룬다.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억새밭을 갈때면 마치 반갑다고 손을 흔들어 주는 집주인 같기도 하고, 그 자리를 떠날 때는 잘 가라고 배웅하며 손을 흔드는 것처럼 친근함이 있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될 때는 억새는 자주색을 띤다. 아직 무르익지 않아 생생함도 있고, 풋풋함이 있다. 찬바람이 본격적으로 불면 자주색 억새는 은색과 하얀색의 꽃을 활짝 피운다. 그래서 억새는 같은 가을이라도 초가을과 가을의 절정, 그리고 늦가을마다 각기 다른 색을 띤다.

억새의 매력은 시기뿐만 아니라 하루 사이에도 카멜레온처럼 색을 바꾼다. 아침과 점심 그리고 저녁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이른 아침 동이 틀 때의 억새는 이슬을 흠뻑 머금은 하얀 꽃이 아침햇살을 흡수하면서 붉은 구리 빛의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그리고 해가 중천에 뜨는 낮에는 본래의 모습인 은색을 띤다. 청명한 푸른하늘이 짙어지면 은색은 더욱 도드라진다. 날씨가 흐린 날에는 회색구름과 은색의 억새가 마치 하늘과 땅을 이어놓는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해가 중천을 지나 오름과 바다사이로 질 때면 억새는 강렬한 노을빛에 반사돼 제주의 들녘과 오름을 온통 황금색으로 바꿔놓는다.

제주의 억새의 매력이 큰 이유는 제주의 바람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억새가 제주의 가을 바람과 함께 만나면서 때로는 흥겹게 때로는 서글프게 때로는 격렬하게 춤사위를 선보인다. 

산들바람에 흔들거리는 억새는 흥겨움을 절제하며 어깨만을 들썩거린다. 그리고 제주특유의 세찬 바람이 불면 화려한 동작을 선보인다.

억새는 가까이에서 보는 매력도 있지만 멀리서 풍경을 바라보는 매력도 크다. 멀리서 바라본 억새군락은 한마디로 은빛 바다다. 약한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는 잔잔한 파도가 일듯하며, 거센 바람을 만나면 성난 파도처럼 크게 출렁거린다. 

억새의 흔들리고, 서로 부딪히면서 '서걱서걱', '스억스억', '싸악싸악' 하며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찰랑거리는 바닷소리 같기도 하고, 거친 바람이 불때면 태풍이 일 듯이 거센 파도소리도 연상케 한다.

억새에는 오래전부터 제주사람들의 생활과 숨결에도 배어 있다. 억새의 속잎인 '미'는 부드러우면서도 질긴 탓에 여러 가지 생활용품을 만드는 재료로 이용됐다. 

제주어로 '미삐쟁이'라 불리는 하얀 억새꽃도 잘 말리면 강한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화심'이 된다. 

제주의 억새는 가을이 되면 해안부터 오름과 들녘 그리고 한라산까지 어디에서나 펼쳐져 있다. 억새가 펼쳐진 '어욱밭'(억새들판)에는 제주선조들의 삶도 배어 있다. 언제나 제주가을과 함께하는 억새의 정취를 즐겨보자.  김용현 기자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