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감귤

사진=농촌진흥청 제공.

11세기 이전부터 조정진상품 포함…제주인에는 노역·부담
1960년대부터 산업화…대학나무 명성 가진 소득작물 부상
8년 만에 북한에 전달…한반도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감귤은 제주를 상징하는 과일이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주요 진상품이었다. 10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감귤은 제주인의 삶과 말 그대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존재다.

△역사 속 감귤
감귤은 중국에서 황제가 제사를 지낼 때 썼다. 우리나라에서도 '선계의 맛'이라 극찬했고, 일반 백성은 맛보기도 힘들었던 귀한 과일로 전해지고 있다.

제주에서 감귤이 재배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고려사 세가」에 의하면 문종 6년(1052년) "탐라에서 세공하는 귤자의 수량을 일백포로 개정 결정한다"라고 해 11세기 이전부터 제주인들은 감귤을 진상하고 있었다. 

「고려사」에 의하면 백제 문주왕 2년(서기 476년) 4월 탐라에서 방물(方物)을 헌상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고려태조 천수 8년(서기 925년) 겨울 11월에 "탐라에서 방물을 바치다"를 시작으로 "방물을 바쳤다" "토물(土物)을 바쳤다" 하는 기록이 계속되는데 그 방물과 토물의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분명한 기록은 없지만 정황상 교역 물품이나 방물에 감귤이 포함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수인제(垂仁帝)의 명에 의해 서기 70년에 전도간수(田道間守)는 이가 상세국(尙世國)에서 비시향과(非時香果)를 가져왔다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비시향과는 감귤의 한 종류가 분명하며 상세국은 제주도를 지칭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는 사람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태조원년(1392년)부터 제주도 귤유(橘柚)의 공물에 대한 기록이 계속되고 있다.

세종 8년(1426년)에는 호조의 게시로 전라도와 경상도의 남해안에도 유자와 감자를 각 관서에 심게했다.

감귤(柑橘)이란 용어는 세조원년(1456년)에 제주도안무사에 내린 유지 「세조실록」에 나온다. "감귤은 종묘에 제사지내고 빈객을 접대함으로써 그 쓰임이 매우 중요하다"로 시작된 유지에는 감귤의 종류간 우열, 제주과원의 관리실태와 공납충족을 위한 민폐, 사설과수원에 대한 권장방안, 번식생리와 재식확대, 진상방법의 개선방안 등을 기록하고 있다.

△제주인에는 고난
진상품 감귤은 종묘에 모신 선왕들의 영혼에 바친 뒤 신하들에게 나누어주는데, 성균관 유생들에게도 나눠졌다.

조선 명종 19년(1564년)에는 성균관 유생들에게 귤을 나누어주면서 시험을 치르게 한 과거제도인 황감제(黃柑製)가 시행됐다.

정조는 즉위년(1776년) 황감제를 실시하면서 승지에게 "황감을 나누어줄 때 다투어 뺏어가는 난잡한 일이 있으면 유생을 정거(停擧)하고, 만약 단속하지 않으면 대사성도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하교할 정도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당시 감귤 진상은 제주인에게는 크나큰 노역과 부담이 됐다.

1526년 5곳의 방호소에 과원(果園)을 설치했고, 1530년에는 과원이 30곳에 달했다. 중앙에서 요구하는 감귤의 진상 액수를 충당하기 위한 방책 때문이다. 1704년 이형상 제주목사 시절에는 관과원이 42곳으로 늘어났다. 

당시만해도 감귤재배는 관리들의 강요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었고, 공납량의 연차적인 증가로 지방관리들의 횡포까지 가중되어 민폐가 많았던 관계로 조선말기에는 차츰 재배주수가 감소되었으며 고종 31년(1893년) 진상제도가 없어진 이후는 과수원이 황폐화됐다.

△든든한 소득작물로
그러던 감귤이 제주인에게 큰 선물을 안겨주던 시절도 있었다.

재일제주인들의 감귤묘목보내기 운동 등에 의해 온주밀감이 대량 보급됐고, 1964년부터는 농어민 소득증대 특별사업으로 정부지원에 의해 감귤산업이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대학나무'라 불리며 제주인들의 든든한 소득작물이 됐다.

최근 제주감귤은 농산물 시장 개방과 국내 경쟁과일 성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국민과일'의 명성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도 부단히 하고 있다. 새콤달콤한 감귤을 먹는 것 만으로도 삶의 피로를 덜고 얼굴에 웃음꽃을 피울 수 있게 하는 마법을 가진 제주감귤. 여전히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로 남아있는 이유다.

△비타민C 평화외교 
제주감귤은 이제 평화의 상징이 됐다. 지난 11일 우리 군 수송기가 제주감귤을 싣고 제주공항을 출발해 평양 순안공항으로 향했다. 12일에도 2차례 군 수송기가 제주감귤을 북한으로 수송했다. 2일간 4차례에 걸쳐 200t이 보내졌다. 

제주감귤이 북한으로 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제주도는 지난 1998년 대한적십자사 등과 감귤 100t을 북한에 보낸 것을 시작으로 2010년까지 12차례에 걸쳐 4만8328t을 보냈다. 북한은 감사의 표시로 2002년부터 4차례 제주도민을 북한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제주감귤을 북한으로 보낸 것에 대해 당시 외신은 '비타민C 외교'로 평가하기도 했다. 2010년 5·24 대북제재 조치로 감귤 북한 보내기가 전면 중단되기 전까지 제주도와 북한 사이에는 좋은 신뢰 관계를 형성했었다.

제주감귤은 한반도 평화 정착의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강승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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