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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이 겪은 일 내일 아니라 할 수 없어"

기사승인 2018.12.06  19: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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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동윤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

1987년 6월 장기 군부독재를 청산하기 위해 온 국민이 일어섰던 '6월 민주항쟁'은 사회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끼쳤다. 제주지역은 6월 민주항쟁 과정에서 그동안 '금기'로 여겨졌던 제주도민의 억울한 역사인 제주4·3이 자연스럽게 수면으로 떠 올랐다.

민주항쟁 당시 대통령직선제 등 민주화 열망에 제주4·3 진상규명에 대한 의미가 다소 가려졌지만 이후 제주에서는 이에 대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1999년 3월 제주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4·3도민연대)가 출범하면서 제주4·3진상규명에 탄력이 붙었다.

4·3도민연대 출범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양동윤 도민연대 대표(68)는 70년 전에 영문도 모른 채 구금과 폭행을 당하는 등 억울한 삶을 살아온 제주4·3수형인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4·3 수형인의 재심청구를 하는 등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양동윤 대표는 "4·3 수형인들이 영문도 모른 채 불법 구금되거나 모진 고문을 당했다"며 "이번 재판을 통해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양동윤 대표는 사실 제주4·3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양 대표는 "가족 중에 제주4·3 당시 피해를 당한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 대표는 제주4·3의 진상규명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나서고 있다.

양 대표는 "제주시 한경면 두모리에서 나고 자랐다"며 "전후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당시에는 모두 먹고살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이어 "먹고 살기는 어려웠지만 생활이 고단하거나 힘들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며 "비록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지만 제주 사람들은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 보니 어려운 시기를 지혜롭게 극복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양 대표가 제주4·3 당시 직접적인 피해를 보지 않았지만 제주4·3 진상규명과 수형인 등 도민들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것은 어릴 적부터 겪었던 공동체 문화 때문이다.

양 대표는 "이웃이 겪은 일인데 내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며 "도민 모두가 잘못된 국가 공권력에 피해를 봤고, 누군가는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동윤 대표는 "4·3 수형인 재심 청구를 통해 수형인들이 잘못된 군사재판에 의해 피해를 봤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선언적·정치적 의미의 제주4·3진상규명과는 성격이 다르다"며 "이번 재심은 공식적인 기록에 대한 것으로, 제주도민이 4·3 당시 억울하게 희생됐다는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양 대표는 "제주도민이 겪은 아픈 역사가 세상에 드러나고, 유족과 제주도민의 노력으로 한 발씩 전진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람"이라며 "삶을 나누던 도민의 아픔이 눈에 들어온 것이 지금껏 제주4·3의 완전한 해결과 진상규명을 위해 일하는 원동력"이라고 밝혔다. 

윤주형 기자 21jemin@naver.com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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