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 사회부 차장

범죄자와 특정 관계에 있는 사람까지 함께 형사책임을 지우는 제도인 '연좌제'의 역사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시대에는 반역자의 가족을 노비로 삼거나 참수했으며, 조선시대에는 모반대역죄의 경우 죄인은 능지처참하고 아버지와 16세 이상 아들은 교수형에 처했다. 16세 이하 아들과 어머니 처첩은 노비로 삼았다. 

역사서나 TV 사극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족(三族)을 멸하다', '구족(九族)을 멸하다' 등의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왕조는 1894년 갑오개혁을 단행하며 "죄인 이외에 연좌시키는 법은 일절 금지한다"고 규정, 연좌제를 폐지했지만 일제강점기와 남북분단을 거치면서 다시 살아났다.

제주에서는 1948년 연좌제가 부활했다. 당시 4·3 유족들은 연좌제로 장래가 막히는 등 무고한 희생이 당대에 그치지 않고 유족에게 대물림됐다. 군·경토벌대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사법처리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희생자 유가족은 연좌제에 의해 감시당하고, 공직 진출, 취직, 승진, 사관학교 등 각종 입학시험과 해외 출입 등에 온갖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4·3의 또 다른 아픔이기도 하다.

헌법 13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해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반역자의 친족·외족·처족까지 3족을 처벌했을지 모르나 지금은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연예계 '빚투('빚'과 미투(Me too)를 합친 신조어)'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연예인의 부모가 진 빚을 자녀들이 갚아야 한다는 책임을 물어 시작된 빚투 논란을 두고 '현대판 연좌제'가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연예인은 대중의 관심을 받는 공인인만큼 사회적 또는 도의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뉘고 있다.

연좌제는 봉건적이고 전근대적인 악습이다. 낡은 구시대의 연좌제가 오늘날 사회·정치적 이슈와 맞물려 비유되거나 거론되는 자체가 안타까울 뿐이다. 무엇보다 연좌제의 아픔을 겪은 4·3유족 등 제주 도민에게는 고통의 단어나 다름없어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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