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 '8과 1/2'(1963)을 최근에 다시 봤다. 영화감독 '귀도'의 좌충우돌 로맨스 서사라고만 하기엔 뭔가 미심쩍은 영화. 어른이기도 하고 어린아이이기도 한 '귀도'의 웃픈(우습기도하고 슬프기도한) 삶을 보면서 한숨이 절로 나오면서도 내 안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아마 모리스 샌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나오는 맥스의 모습도 내게 있지 않을까. 가끔씩 과도하게 돌출하는 나의 웃음과 행동의 저변에는 어린 시절 다 쏟아내지 못한 충동과 열정이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해마다 신년초면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곳이 있다. 내 유년의 추억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신례리에서 법호촌-수모르동산-강정마을까지 이동하면서 걷기도 하고 달리기도 했다. 뚜렷한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맘때쯤이면 왜 나는 현재와는 거리가 먼 그곳으로 떠나는 것일까. 마치 '시민케인'에서 화자가 '로즈버드'의 정체를 찾아 떠나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찾아보아도 정작 찾고자 하는 것은 찾지 못하거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줄 알면서도 걷게 되는 건 스스로에 대한 예의가 아닐는지. 미처 다 헤아려주지 못한 과거에 대한 미안함 같은 것 말이다. 

걷다보니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곳이 있다. 이름도 정겨운 '점방'이란 간판이 걸린 이곳. 그 앞에 가서 한참이나 안을 들여다봤다. 딱히 무엇을 살 마음은 없어도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무리 안을 들여다보아도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길이 없고 뽑기통 앞에 어린아이처럼 쭈그려 앉았다. 뽑기통을 흔들어본다. 뭔가 잔뜩 들어있긴 하다. 호주머니에 동전이 있었다면 당장에 뽑기를 열개정도는 해보았을 것이다. 마침 동전을 차 안에 놔두고 걷고 있던 터라 마음만 애달팠다. 가게 안에 사람이 있다면 지폐로 잔돈을 바꾸기라도 했을텐데 말이다. 편의점은 저 멀리 있기도 뽑기를 하겠다는 마음은 접었다. 대신 이곳저곳 사방을 샅샅이 살펴보는 재미로 대신하기로 했다. 가게 앞에는 유모차 한 대, 진열대 밑에는 비료부대, 진열대 위에는 초코파이 상자와 그 안에 비닐봉지, 출입문에는 '담배'라고 적힌 스티커와 '택배' 스티커가 붙여져 있다. 이곳은 동네 점방이기도 하면서 택배를 붙여주는 것이기도 한 모양이다. 출입문 안에는 사실 무엇이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너무 오래 지켜보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해서 일어서는데 동네 개가 왈왈 짖었다. '넌 누구냐'라는 볼멘소리다.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세 시를 지나고 있었다. 윤석중의 동시 '넉점 반'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아기가 아기가 가겟집에 가서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 시냐구요" "넉점 반이다."
"넉점 반 넉점 반" 아기는 오다가 물 먹는 닭 한참 서서구경하고
"넉점 반 넉점 반" 아기는 오다가 개미거둥 한참 앉아 구경하고.
"넉점 반 넉점 반" 아기는 오다가 잠자리 따라 한참 돌아다니고.
"넉점 반 넉점 반" 분꽃 따 물고 니나니 나니나 해가 꼴딱 져 돌아왔다.
"엄마 시방 넉점 반 이래" (윤석중 시 「넉점 반」 전문)

남의 집 점방 앞에서 웃을 일은 아닌데, '넉점 반' 생각에 연달이 떠오르는 일이 있어 크게 웃는다. 어렸을 때는 점방에서 외상을 많이 했다. 우리동네 점방 주인 아주머니는 외상을 할 때마다 공책에다 작대기를 하나씩 그었다. 예를 들어 밀가루 5포대 이렇게 적는 게 아니라 숫자 '5' 대신 '正'을 긋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주머니는 집집마다 암호 같은 별명을 적어 놓았다. 부산이 고향인 할머니는 그냥 '부산할망'인데, 뒷집 기숙이네는 '독구어멍'이라고 적었다. 기숙이가 외상을 할 때 옆에서 지켜봤는데 '독구어멍'이라고 적힌 란에 작대기를 긋고 있는 것을 똑똑히 봤다. 그때부터 나는 왜 기숙이네가 '독구어멍'일까 궁금했다. 기숙이네 집에는 '독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알 길이 없었는데 어느 날 내가 기숙이한테 물었다. "너네 집 무사 독구어멍"이라고. 그때 기숙이가 정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크게 웃었다. "우리집 개가 점방 아주망네 개 어멍. 그러니까 점방 아주망네 개가 우리집 개새끼"라면서. 
설명을 듣고도 개 족보를 따지느라 한참 망설였던 그 옛날의 추억.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재미있다. 물론 나 혼자만 웃게 되는 별로 재미없는 일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재미있다. 머리만 벅벅 긁으면서 웃을 시간을 놓쳐버린 어리바리 한 나와 '너 그것도 몰라'라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놀려먹던 기숙이. 그리고 전라도에서 시집 온 점방 아주머니의 치마폭에 듬직하던 돈주머니. 전라도 사람이라는 타박 안 들으려고 부단히도 제주말을 쓰려고 노력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니치름(침) 닦으라'며 손수건을 내 동생에게 내밀던 투박한 손마디까지도. 그 집 아들이 우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을 나중에 듣고 얼마나 슬프고 무서웠던지. 

왜 그 시절 아이들은 우물에 빠져 죽은 일이 많았는지.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 그래서 윤동주의 시 「자화상」을 읽으면 자꾸 그 집 아들이 떠오른다. 우물 속에 비친 파란 하늘과 나뭇가지에 그 집 아들이 걸려 있을 것만 같은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기억의 지속'처럼 말이다. 기억은 때로 생크림처럼 부드럽게 가슴을 풀어주기도 하지만 강렬하게 남은 기억의 한 장면은 응축된 그 시간을 되돌려 내 눈 앞에 걸어놓기도 한다. 우물 속에 빠진 한 아이를 생각할 때 나는 다시 그 얼어붙은 시간을 보게 된다. 적어도 그런 일은 없기를 바라면서. 그런 의미에서 '세월호'는 우리 시대 최악의 얼어붙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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