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사유 사물과 풍경 22. 목련의 뿌리를 읽는 봄날

봄이다. 한밤에도 아파트 앞 목련나뭇가지에 불이 환하게 켜졌다. 간밤에 누가 밤새도록 목련나무 아래서 성토를 해댔는지 묽은 토사물이 흥건하다. 아파트 경비원이 물 양동이를 들고 와 씻어대면서 "요즘 젊은 것들이"라면서 구시렁댄다. 젊은이의 짓인지 노인의 짓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언제부터인지 '젊은 것들이란' 말은 '이해할 수 없는 짓을 한 자'의 대표명사가 돼버렸다. 젊은이들의 수난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목련꽃 아래서 사진 몇 장 찍노라니 지나가던 지인이 '저 꽃 덩어리 하나면 하루 마실 차 한 주전자는 나오는데'라며 인사를 한다. "아, 정말요?"라고 작은 소리로 물었더니 왜 그렇게 속삭이는 소리로 말 하냐며 웃었다. "얘 네들 들을 까 봐요."라고 대답했다. 꽃들이 들었으면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나무 한 그루에 세 식구가 올망졸망 피었다. 위로 갈수록 환하게 봉오리를 열어젖혔고, 중간에는 적당히 체면을 지키는 양태다. 아래에 있는 것들은 아직 잠에서 덜 깬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목련나무 한 그루에 삼세대가 사는 격이다. 

안팎으로 햇빛이 드는 양이 다르고 따라서 꽃이 피는 시기도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생명의 성장에는 햇빛이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행랑채에 세 들어 사는 애들은 자꾸 울었다. 행랑채의 의미는 계급의 차이 또는 중심부에서 벗어난 여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은유일 터이다. 그런데 '행랑채'라는 말은 소설에서나 들었지 실생활에서 들었던 경험은 없다. 오히려 '안거리 밖거리'라는 말이 나에겐 익숙하다. 

고등학교 때 남의 집 문간방에 자취하던 적이 있다. 그 집은 안거리, 밖거리(바깥채), 문간방 하나가 달려 있는 집이었다. 안거리에는 주인 네가, 밖거리에는 어린 아이를 둔 젊은 부부가 살았다. 나는 문간방에 세 들어 살았다. 주인집은 어머니와 아이들 넷 이렇게 다섯 식구가 사는 집이었다. 주인집에 아버지가 없다는 게 왠지 측은하면서도 안심이 되었다. 어쩌면 남이 속모를 어려운 사정을 서로 공감한다는 듯 주인집 아주머니는 편안하게 나를 대해주었다. 

주인아주머니는 한 해에 서너 번은 꼭 부엌간에 나물무침이며 돼지고기 산적, 옥돔구이 반쪽으로 나눈 것을 갖다놓았다. 제사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는 제사음식도 귀한 시절이었는데 혼자 자취하는 학생의 고달픈 심정을 헤아렸는지 손 큰 인심을 보여주었다. 지금 같으면 고맙다는 인사라도 잘 할 것을 그때는 쑥스러워서인지 인사도 잘 못했다. 

어느 해인가 밖거리에 살던 젊은 부부가 집을 마련해 이사 가고, 중년의 부부가 이사를 왔다. 남편은 등이 심하게 굽어 있었다. 부인은 식당 주방 일을 한다고 하던데 농인(聾人)이었다. 가끔 부인과 눈을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가벼운 눈인사만 하고 스쳐지나가곤 했다. 등이 굽은 남편은 목청이 우렁차고 쇳소리가 나는 음색이었다. 술을 자주 마시고 부인에게 자주 소리를 쳤다. 나는 '아무리 저렇게 말해도 못 알아들을 텐데'라며 혼잣말을 했다. 

어느 밤엔가는 남편의 술주정이 심했는지 부인이 내 방문을 두드렸다. 어벌쩡 인사를 하고는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연신 고맙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말을 할 수 없으니 서로 손만 비비며 얼마간 앉아 있다 부인이 내 발을 만졌다. 순간 멈칫했으나 무슨 뜻인지 헤아리려 그 눈을 쳐다보았다. 아마 발이 곱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자신의 발을 보여주며 손을 양쪽으로 길게 늘어뜨렸다. 자신의 발을 너무 커서 밉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말해놓고는 겸연쩍었든지 빙긋이 웃으면서 연신 발을 만졌다. 그때 백열등 아래 반짝이던 아주머니의 맑은 눈망울을 잊을 수 없다. 목련꽃을 보면 그 아주머니가 자꾸 생각난다. 용기를 내어 끌어안아주고 싶은 목련꽃 한 송이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목련을 끌어안았다 꽃피는 순간을 지켜보고 싶어 목련의 남편처럼 종일 곁을 서성거렸으나 그녀는 경련하지 않았다 배가 불룩한 목련은 지금 임신 중, 그녀는 행복할까 목련을 가까이하면서 내 불행이 꽃피지 않기를 나는 빌었다 나는 불행하지 않다 절대 불행하지 않다 일기 대신 기록하는 불안한 문장들, 나는 행복을 꿈꾸지도 않으면서 왜 불행에 민감한 걸까 내가 잠든 사이 목련이 한꺼번에 뭉텅 꽃을 피워놓았다 오래지 않아 꽃잎들은 흩날릴 것이지만 그것이 목련의 불행은 아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다 비워버린 상태, 그것을 불행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출산으로 할쑥한 그녀를 위해 내 살을 한 근 베어내어 뿌리 곁에 묻어주고 싶다 소리 없이 함성을 지르는 목련의 흰 꽃잎들, 저것들을 먹여 살리는 힘은 그녀의 뿌리에서 나오는 법 나 목련을 끌어안으며 네가 행복하다면 내 불행쯤은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할게…… 중얼거려보는 일이 내 일과이다 가난이 불행을 몰고 온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면서 꽃잎들 후드득 지면 그 꽃잎들 잘근잘근 씹어 내 피가 되게 하리라 마음먹었다 (김충규 시, 「목련을 끌어안다」전문)

밤에 퇴근하다 길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나면 고양이가 지나가나 했다. 요즘은 고양이 소리보다 사람의 소리가 더 많다. 쓰레기더미에서 빈 병 또는 종이상자들을 골라내는 소리가 군데군데서 들린다. 그들의 굽은 등을 보면 "저것들을 먹여 살리는 힘은 그녀의 뿌리에서 나오는 법", 이 시구가 떠오른다. 어머니 표현대로라면, "게나 저나 오몽 거려 봐도 베롱헐 날"이 없는 삶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밤낮없이 백열등 아래 콩 고르듯 삶의 부스러기들을 주우러 다닌다. 고단한 생들이 여기저기서 퍽퍽 쓰러지기도 한다. 날이 풀리면 사방에서 부스럭대는 소리 더욱 들리겠지? 목련꽃 백열등이 환히 비추는 밤에 누군가는 생의 질긴 다리를 질질 끌며  나무 아래 주저앉고 펑펑 울지도 모르겠다. 아, 환장할 삶이여, 꽃이여!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