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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민포럼] 우리는 모두 여행자다

기사승인 2019.04.18  18:2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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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광서 (주)아이부키 대표·논설위원

우리가 여행하는 이유는 잃어버린 나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다. 그 아스라한 것, 처음 가보는 저 산을 넘어서면 혹시 나타날지도 모를 그것, 어수선한 수다에 길을 잃었다가도 불현듯 다시 나타나는 그 추적의 긴장을 따라가는 길이다.

사람들은 흔히 어딘가에서 본 멋진 곳을 찾아가 핸드폰에 담아오는 것을 여행이라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여행의 겉모습이고 진실이 아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지의 추악한 기억을 한 보따리 싸와서 투덜대는 사람은 자신의 얕음에 화내는 것이다.

사기를 당한 사람은 화내고 억울함을 겪은 사람은 당혹하겠지만 진짜 여행자는 결코 화내거나 당혹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그는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을 잡으려는 어린왕자와 같기 때문이다. 온갖 호사스러운 물건을 사모으고 기이한 풍경을 사진에 담아와도 모두 눈 깜박할 사이 사라질 기억들이다. 여행자는 손에 잡히지 않지만 사라지지 않을 것을 찾는 사람이다.

원숭이 백만 마리를 모아도 사람이 되진 않는다. 애초에 출발이  다르다. 무수한 여행을 다녀도 이와 같은 시선을 얻지 못하면 여행했다고 말할 수 없다. 단 한 번을 다녀도 진짜 여행자가 돼야 한다. 아니 우리는 이미 여행자다. 내가 사는 곳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억의 문제다. 잘 기억해보면 우리는 수많은 시간을 거슬러 여행을 해왔고 수없이 많은 풍토와 풍속을 거쳐왔다. 낯선 세상에 던져진 벌거숭이 아이는 수많은 낯선 풍경과 낯선 표정, 낯선 태도를 모두 겪어내 지금 이곳에 도달한 것이다. 다만 현재에 너무 몰입해있다 보니 그 모든 변화의 시간을 잊었을 뿐이다.

그 모든 것이 나의 또 다른 모습이요 내 잃어버린 기억의 편린들이다. 이러한 시선이 없으면 우리는 어딜 가도 경계하는 눈빛을 숨기지 못하는 뜨내기일 뿐이다. 우리가 애초에 여행자였다는 기억을 되살리는 일은 일상에 찌든 존재가 원래 자신이라는 착각을 깨버리는 일이다. 원래 나인 것은 없었다. 여행자는 얽매이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얽매임은 우리가 원래 에너지로 가득 찬 존재라는 사실을 잊게 한다. 우리가 본시 탁월한 여행자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은 우리가 무엇이라도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었음을 깨닫는 일이다. 여행은 잃어버린 본성을 되찾는 일이다. 여행자에게 어디 어디를 가봤고, 내가 누구였고, 무슨 일을 했다거나 하는 기억은 사치다.

여행은 우리가 본시 여행자라는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어야 한다. 너무도 몰입한 역할극에서 깨어나면 현실의 괴로움이나 한계, 그 모든 실패들이 큰 문제가 아니라 다음 발걸음을 재촉하는 하나의 징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행자의 가벼운 발걸음을 다시 찾아야 한다.
아이 때는 어디를 가도 모두 처음 가보는 곳 처음 겪는 일들이었으니 실로 우리는 탁월한 여행자였다.

그러나 어느 때부터 우리의 발걸음은 무거워지고 점차 옴짝달싹 못할 지경이 돼 여행자의 본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곳을 가도 뻔뻔한 사치만 남아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을 타인에게 쉽게 돌려버린다.

좋은 여행자는 어딜 가도 최고의 것을 발견한다. 최고를 놔두고 최악을 애써 가져오겠다는 사람은 여행자의 본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다. 우리가 소유했다고 생각되는 것, 성격이나 재산, 명성과 기억들까지 모두 여행자의 주머니에 잠시 담겼다가 버려질 것들이

다. 그렇게 환기를 통해 잊혀가는 본성을 일깨우는 것이 여행의 진짜 가치다.


이광서 webmaster@jemin.com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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