馟(도)·栖(서)·關(관)프로젝트 / 도서관, 마을 삶의 중심이 되다 <11>타이페이시 도시재생·보장암국제예술인촌

도시재생 아닌 문화재생 접근…마을 속 ‘섬’ 대신 ‘삶’으로
‘개발로 인한 파괴 속도를 늦추자’ 어반코어 프로젝트 눈길
불법 판자촌이 역사건축물에서 예술가 마을로 변신 거듭

보장암국제예술인촌
트레저힐아티스트빌리지

사람이 산다. 마을의 기본은 사람에서 찾아야 한다. 도시의 변신은 항상 사람과 함께 해야 하며, 변화된 공간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창조와 변화의 에너지를 줄 수 있어야 한다. 명쾌하지만 현장에서는 가장 빨리 사라지는 이론이기도 하다. 타이페이시의 도시재생과 마을 만들기 사업은 우리나라와 닮은 듯 하면서도 다르다. 접점은 주거공동체의 의식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민간 차원의 문화적 가치 회복 운동

도시재생 바람을 타고 제주는 물론 전국적으로 유휴건물을 활용한 문화재생 사업이 봇물을 이뤘다. ‘주변 지역 활성화’라는 취지를 내걸고 사업을 추진했지만 결과는 그리 흡족하지 않았다. 지역주민이 이용하지 않으며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으면, 관리 주체 중심의 일방적 운영으로 마을 속 ‘섬’으로 남는 경우가 허다했다. 일부 유용한 사례가 있기는 했지만 인프라 이상의 가치를 만들지 못했다.

타이페이에는 ‘어번코어(UrbanCore)’라는 이름으로 도시 속 방치된 건축물을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2년간은 젊은 예술가, 건축가, 디자이너에게 유휴 건축물을 통째로 무상 제공하여 30여 개의 대안 공간, 건축 사무실, 사진 스튜디오, 작가 레지던시, 디자인 스튜디오가 운영되고 다양한 예술적 실험들이 전개됐다.

이를 계획한 곳은 정부 기관이 아닌, 사기업인 예술 건축 재단 JUT(JUT Foundation for Arts and Architecture)다. JUT는 토지 개발 회사를 모회사로 두고 있으면서도 재개발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 대신 예술 건축 재단을 통해 도시재생에 주력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무분별한 도시 개발과 거리를 두고 타이페이가 과거로부터 가져온 도시 문화적 가치를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다. 우리 외에 타 개발사도 설득하여 기존 건축물을 최대한 문화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들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급속화되고 있는 도시 파괴의 속도를 늦추고자 한다”.

정부나 지자체 입장에서도 이런 재단의 활동은 도시 보존과 개발, 균형 발전이라는 고민을 해소하는 장치로 유용했다.

JUT재단은 2011년부터 3년간 도심 중앙에 방치된 건물의 운영권을 타이페이 시로부터 받아 ‘중산 크리에이티브 허브 URS 21Chung Shan Creative Hub URS 21’이라는 이름으로 콘서트, 전시, 연극, 플리마켓, 강연, 세미나, 문화 교육 등 복합적인 문화 활동을 선보였다.

타이페이의 불법 건축물이 지닌 자생적인 가치를 발견하기 위해 이를 주제로 한 건축가들의 실험적인 유휴 공간 프로젝트를 지원하기도 했다.

△마을 만들기 참여 유도

이런 흐름도 공동체 없이는 진행하기 어렵다. 고도로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면서도 사회주의적 관점의 운영이 맞물린 특성을 가지고 있다. 원도심 공동화와 신도심 개발로 인한 빈민가 등 양극화, 환경오염, 이웃과 관계 단절 같은 문제들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의 마을공동체가 주민들의 ‘관계 형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대만은 도시재생이나 문화예술활통을 통해 마을을 변화시키고 주민을 참여시키는 ‘마을 만들기’ 보다 성격이 강하다.

이런 구조에서 타이페이시 도시재생 전략기지인 URS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URS는 Urban Regeneration Station의 약자로 URS는 ‘그대의’, ‘당신들의’, ‘동반자’ (유얼스) 등을 의미하는 영문 yours와 발음이 같다. 참가자들이 정의한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뒤에 붙는 숫자는 번지를 뜻하며 각 번지마다 스테이션 장이 존재한다. URS는 ‘소프트 도시주의’로 생겨난 도시재생 전략으로 개방성, 사회성, 실험성, 이동성을 특징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각 URS는 유휴 공공건축물과 새로 리모델링한 개인주택 등을 활용하며 공모를 통해 입주한 민간단체에게는 무상임대 형식으로 공간을 빌려준다.

입주한 민간단체는 현지문화와 공간의 특성을 고려하여 지역별로 역할을 수행한다. 도시의 유기체적 성격을 이해하고 거리 활성화를 통해 도시변화를 촉진하고자 하는 전략이다.

각 URS는 무상으로 공간을 임대받는 대신 고유의 사업을 통해 수익을 내서 운영하고 수익의 일정부분은 공공과 지역사회에 다시 환원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다고 했다.

CENT라는 공동체종합지원센터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도 있다.

△주민과 예술 미학 찾기

대만이 선택한 도시재개발의 방법으로 철거와 다시짓기, 옛거리 복원과 리모델링, 보호 및 보존의 방식이 있다. 생활과 산업공간으로 출발하여 문화로써 지역 재생을 이끌며 국제교류활동도 진행하거나 주민과 함께 생활 미학을 찾는 기획을 실험하는 곳도 있다.

보장암 국제 예술촌은 보존과 리모델링을 연결한 대표적인 예다.

타이완 대학 맞은편의 보장암사 주변의 집들은 해방 후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사이에 관인산 기슭의 비탈진 경사로를 따라 지어진 불법 판잣집들이다. 많은 도시들이 그렇듯 합법과 보호, 관리라는 기준 아래 철거 위기에 처한다. 마을을 떠날 수 없는 사람들과 마을의 가치를 이해한 지역활동가들이 뭉쳤고 2004년 마을 전체가 ‘역사 건축물’로 지정된다. 그 다음은 긴 호흡이다.

2006년 이후 타이완의 보물사업(Treasure Hill settlement)일환으로 마을을 재구성한다. 잔류 희망 주민을 그대로 둔 채 나머지 공간에 대한 리모델링을 추진했다.

대부분이 국공유지였기 때문에 많은 자금이 투자되지 않은 대신 토속적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정부 차원에서 2007년 이 곳을 폐쇄하면서 안전하게 복원작업을 진행한다.

2010년 10월 보장암 국제 예술촌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마을이 열리지만 다시 돌아온 주민은 22가구에 불과했다. 그리고 남은 공간에는 예술가들이 들어왔다.

예술가들이 마을에 작업실을 만들어 창작 활동을 하기 시작했고, 허름한 판자촌 느낌 이면에 유니크한 공간과 창작물들로 타이페이의 상징이 된다.

현재는 역사적인 커뮤니티 보호, 거주 예술가 프로그램, 보장암 관광 호스텔이라는 3가지 프로젝트 과제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곳이 기존의 문화 지역과 다른 특징은 지역 주민과 예술가들이 함께 살면서 만드는 예술촌이라는 점이다. 예술을 일상의 삶으로 만들면서 풍부한 이미지를 얻게 됐고 예술가와 지역 주민들 간 소통이 마을을 지키는 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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