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길 서귀포의료원장

서귀포의료원 위탁문제가 갑자기 수면위로 떠올랐다. 시민들의 눈높이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서귀포의료원은 전국 35개 지방의료원 가운데 그나마 종합병원 기능을 하는 얼마 안되는 의료원 가운데 하나다. 올해 들어서 모든 것이 좋아지고 있다. 7월 매출까지 지난해보다 진료수익이 20% 증가한 반면 인건비를 포함한 비용은 7.8% 증가해 올해 20억 정도 흑자를 예상한다. 수술은 38% 증가했고 분만 건수도 35% 증가했다. 올해 공공보건의료평가에서는 92.6점을 받아 처음으로 최고등급인 최우수 등급을 받았다.

필자가 의료원장을 맡은 뒤 위탁문제를 계속 제기한 분이 얼마 전에 돌아가신 고(故) 윤춘광 의원이다. 서귀포의료원이 위치한 동홍동이 지역구라서 의료원을 잘 알고 있었고 관심도 많으셨다. 올해 봄에 의료원에서 서귀포지역 도의원들과 간담회를 했는데 그 자리에서 고(故) 윤춘광 의원이 불쑥 위탁문제를 꺼냈다. 본인이 계속 위탁을 주장하지만 위탁은 되지도 않을 것이고 지금 있는 그대로 잘하라고 말했다. 고(故) 윤춘광 의원과 서귀포의료원 사이에 오랫동안 형성되었던 긴장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고(故) 윤춘광 의원의 뼈아픈 지적들이 사실은 서귀포의료원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며칠 전 서귀포시청 기자실에 들러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했다. 위탁은 의료원이 결정할 사안도 아니고 찬성과 반대를 얘기할 입장도 아니다. 간담회를 자청한 이유는 위탁문제가 불거진 뒤로 의사를 구하기 힘들어져서다. 서귀포는 평소에도 의사를 구하기 힘든 지역이다. 지금 신장내과와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구하고 있는데 오기로 했던 의사들이 위탁문제가 집중 보도된 뒤로 안오겠다고 했다. 벌써 진료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혈액투석실이 문을 닫으면 투석환자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소아청소년과 당직이 없는 주말에는 산부인과에서 출산을 못 받겠다고 해서 희망하는 산모들은 제주시에 위치한 병원으로 보내고 있다.

의사들이 오지 않고 지금 있는 의사들이 떠나기 시작하면 서귀포의료원은 위탁하기도 전에 무너질 수도 있다. 필자가 이 문제에 극도로 민감한 이유는 트라우마가 있어서다. 서귀포의료원장의 업무 가운데 가장 어려운 일이 의사를 구하는 것이다. 2017년 봄에 응급실 의사들이 집단으로 사직하는 일이 있었다. 겉으로는 봉합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해 8월에 부임한 필자는 2018년 말까지 계속 이 문제에 시달렸다. 의사들 사이에서 나쁜 소문이 나서 서귀포의료원 응급실에 오려고 하는 의사가 없었다. 올해 초 응급실 사태 때 떠났던 의사들이 돌아와서 비로소 응급실은 안정을 되찾았다. 만약에 이번에 같은 문제가 생긴다면 그 파괴력은 응급실 사태와는 비교도 안 될 것이다. 이번에 무너지면 다시 이만큼이라도 복원하는데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미래의 서귀포의료원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의료원은 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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