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는 김을 매는 어른 들 뒤꽁무니를 쫓으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재미있었다. 김을 매는 어른들의 손놀림을 보며 바로 눈앞의 풀들을 조곤조곤 매는 솜씨가 부러웠다. 어른들의 손놀림을 따라갈 수 없는 나는 김을 매다가도 자꾸 상상의 세계로 빠졌다. 트렌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홀딱 빠져드는 것이다. 

밭고랑에 조촘 한 무릎 꺾고 눌러앉아 '김자옥의 사랑의 계절'을 들었다. 박일의 목소리가 그렇게 감미로울 수 없었다. 라디오는 보이지 않으니 해설자의 목소리와 지문이 중요하다. 듣는 이가 알아듣기 싶게, 보이도록 말해줘야 한다. 그래야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빗소리나 대문 여는 소리, 닭 우는 소리 등은 시간과 공간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주인공의 성격이 감정은 목소리로만 판단할 수 있다. 목소리가 말해주지 않는 이면은 지문해설 몫이다. 그만큼 정확해야 한다. 너무 정확히 다 알려주면 긴장감이 떨어진다. 적당히, 정확히 알려줘야 한다. 이 얼마나 어려운 글쓰기 작업인가. 

사라봉 낙조를 보면서 '이 빛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지는 노을에 감기는 나뭇가지의 사운거림, 길들이 모두 어둠 속에 잠지고 오히려 집들이 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것은 모두 빛만이 그려내는 글쓰기 방식이다. 글을 쓸 때 늘 그게 고민이다. 어떻게 보이지 않는 독자와 보이는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해답을 주는 영화 한 편이 있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 '빛나는'이다. 어떻게 언어를 통해 타인의 내면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다. 영화언어에 대한 영화,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에 대한 철학적 오마주이기도 하다. 

영화 속 미사코(미사키 아야메 역)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영화 지문 해설을 담당한 작가이다. 그녀는 소리만 들을 수 있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영화 지문 해설을 써서 시각장애인들에게 자문을 구한다. 이 모임에 참석한 나카모리(나가세 마사토시 역)는 영화 촬영에 참여한 사진작가로 시력을 거의 잃어가고 있다. 그는 미사코에게 '있을 리 없는 도키에', '살아갈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는 표현이 주관적이고 청자들의 상상력을 방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상심한 미사코는 여러 번 영화를 돌려 보고, 감독을 만나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죽어야지 하면서도 살아야지 하고, 살아야지 하면서도 죽어야지 하는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다 우연히 나카모리의 사진집을 보게 된다. "사진작가란 시간을 잡아두는 사냥꾼 같은 것이다. 앞으로도 나의 왜소함에, 세상의 거대함에 숨을 죽이고 마주할 것이다."는 나카모리의 서문을 읽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사진집에서 실종된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의 장소를 보게 된다. 미사코의 시골집에는 치매를 앓으면서 아직도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가 있다. 나카모리는 시력을 잃어가고, 어머니는 기억을 잃어가고, 미사코는 기억나지 않는 단어를 찾고 있다. 이것이 그들 존재의 실존이다. 모두 사라져가고 있는 것을 겨우 붙잡고 있는 셈이다.

또 한 번의 음성해설 자문 모임에 참석한 나카모리가 미사코에게 강타를 날린다. "마지막 석양 장면에 왜 해설이 없나요? 회피하는 건가요?"라고. 미사코는 이에 대해 "당신 상상력이 문제에요."라고 되받아친다. 각자는 서로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것이다. 하지만 얼마 후, 나카모리의 시력이 완전히 상실 된 것을 안 미사코는 나카모리의 손을 잡아주고, 나카모리는 미사코를 시골마을 석양이 비추는 곳으로 데려간다. 그곳에서 미사코는 "잡을 수 없는 석양을 태양이 잠길 때까지 열심 쫓아다녔다"고 고백한다. 나카모리는 마시코에게 "당신의 마음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이따금 들려왔다"고 화답한다. 각각의 '사라져가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서로의 결핍을 끌어안는다. 미사코가 잃어버렸던 건, 아버지를 따라 석양을 쫓던 동심이다. 나카모리는 보이지 않는 석양을 향해 카메라를 던진다.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벼랑 끝에 선 것이다. 이때 미사코가 나카모리를 끌어안고 키스한다. 그리고 금세 둘은 몸을 뗀다.

시사회가 열린 날, 완성된 내레이션이 키키 키린의 음성으로 흘러나온다. 키키 키린은 가와세 나오미 영화 '앙 :단팥 인생이야기'에 '도쿠에' 할머니 역을 맡은 배우이다. 어쩌면 그 목소리만이 라스트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 '살아갈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다. 나카모리가 과연 시사회 자리에 참석할까? 내내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모습은 과연 무너질까? 그의 얼굴에 변화가 있다면 미사코의 문장은 성공한 것이다. 엔딩 장면을 지문을 보자.
 

새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몰려오는 파도
잿빛 구름이 태양을 베일처럼 덮었다
주조가 스카프를 든 손을 들고
물가에 서 있다

크게 굽이치며 물보라를 일으키는 파도
스카프가 떨어져 물결 속으로 사라진다
눈 앞에서 사라지는 것만큼
아름다운 건 없어
얼굴, 어깨, 몸통이
무너져 내리는 조각상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짧은 보폭으로 언덕을 오르고 있는
주조의 발치
베이지색 코트가 바름을 품고 펄럭인다
어깨를 떨군 주조의 뒷모습
묵묵히 걷는다
석양이 강하게 내리쬐며
어깨 너머로 빛난다
언덕 장상에 닿자 멈춰 선 주조
하늘을 응시하며 미동도 하지 않는다
주조가 바라보는 곳
그곳에

(영화 '빛나는' 엔딩 지문 中)

결국 나카모리가 눈물을 흘린다. 미사코의 노력은 적중했다. 그들의 사랑은 미지수이나 영화는 성공한 듯하다. 시작장애인들에게도 공감할 수 있는 문장을 찾아냈으니 말이다. 그것은 서로의 마음을 찾아 어루만지는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시간은 각자의 결핍, 잃어버린 것에 대한 연민이기도 하다. 나카모리는 시력을, 미사코는 아버지를 잃었다. 대신에 서로의 마음을 얻었다. 그러니 사라지는 것만큼 아름다운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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