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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강제유배지에서 자발적 유배지로

기사승인 2019.11.14  18:5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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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면 예초리 황경한의 묘를 지나 물생이 바위 끝에는 천주교에서 '신앙의 증인'으로 추앙받는 정난주 마리아와 그의 두살 배기 아들 황경한의 슬픈 사연이 담긴 '눈물의 십자가'가 외롭게 서 있다. 백서사건으로 제주도로 유배가던 정난주는 배가 추자도를 지날 때 아들이 평생 죄인으로 살 것을 염려해 경한을 갯바위에 두고 떠났다. 황경한은 어부에게 발견돼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살다가 생을 마친 후 제주섬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묻혔다.

누구도 오기 싫었던 강제 유배지 제주에서
누구나 한 번쯤 오고 싶은 자발적 유배지로

제주도는 육지와 격리된 여건으로 최적의 유배지였다. 그래서 과거 벼슬하던 사람들이 제주도에 유배를 많이 왔다는 말이 있다.

제주는 육지에서 해로로 900리로 중죄를 저지른 자나 큰 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주로 유배됐다. 인조반정으로 폐위를 당한 광해군을 비롯해 비운의 죽임을 당한 소현세자의 세 아들과 손자들도 있다. 보우스님, 정온, 송시열, 김정희, 최익현, 김윤식과 박영효도 제주로 유배를 왔다. 조선시대에 300여명에 이르는 고관대작들이 제주로 유배와 한 맺힌 세월은 보냈다. 

유배에도 최의 크기에 따라 '본향안치' '중도부처' '주군안치' '위리안치' 등으로 나눠졌다. 본향안치는 고향으로 낙향시켜 살게하는 가장 가벼운 유배였지만 위리안치와 절도안치는 가장 가혹한 유배였다. 살고 있는 집 울타리에 가시를 두르고, 그 울타리 안에서만 생활하게 한 것이다. 광해군과 추사 김정희가 이 형벌을 받고 집에서 나가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중도부처는 유배지로 가는 도중 일정한 곳에 머물게 하는 형벌이었다. 비교적 활동 반경이 넓어 유배지 안 행정구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다.

고위관료도 제주로 발령이 나면 낙향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만큼 제주는 과거 누구도 오고 싶지 않았던 '외딴 섬'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현재에 이르러선 '신비의 섬'으로 탈바꿈했다. 한 때 열풍이었던 '제주살이'를 위해 스스로 유배지인 제주를 찾는다. 타지역에선 볼 수 없는 오름 등의 자연환경이 과거엔 '이질적인 것'이었지만 지금은 '신비로운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제주공항과 김포공항의 비행기 노선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장 많은 비행기가 왕복하는 노선이 됐을 만큼 삶에 지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휴식을 위해 자발적으로 제주를 찾는다.

사람들이 오기 싫었기 때문에 제주는 고도성장 개발의 광풍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덕분에 타지역에선 볼 수 없는 용암동굴, 오름 등 제주만의 특색을 간직하고 있어 모두가 한 번쯤 찾고 싶은, 한 번 오면 또 오고 싶은 '자발적 유배지'가 됐다.

아무도 오고 싶지 않은 '강제 유배지'에서 힘들 때 쉼을 주는 곳으로 찾고 싶은 '자발적 유배지'가 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조선시대까지 숨기고 싶었지만 지금은 '한국인에게 사랑 받는 관광지' 제주에 사는 것, 제주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도 될 듯하다. 우종희 기자

우종희 기자 haru0015@naver.com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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