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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건너 섬을 바꾼 인물들...고단했던 삶의 흔적 오롯

기사승인 2019.11.14  19: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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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시 대정읍 김정희 유배지에 위치한 제주추사관

제주 유배인들의 흔적 돌아보기

최고의 여행지로 사랑받는 남쪽 섬 제주는 오래 전 혹독한 유배지였다. 척박한 환경에 먼 바다 가운데 있는 섬이라 도망치기도 어려운 탓에 당시 제주도는 중죄인이나 당정에 휘말린 정치인과 관료들이 쫓겨 오는 '눈물의 땅'이었다. 하지만 제주도에 유배를 온 사람들은 당대의 대학자나 고위 관료, 심지어 왕까지 역사적인 인물이 많았고, 그만큼 제주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제주에 남아 있는 유배인들의 흔적을 따라가보자.

▲제주추사관

서귀포시 대정읍 김정희 유배지에 있는 제주추사관은 조선 후기 대학자이자 명필, 예술가인 추사 김정희 선생의 삶과 학문, 예술세계를 기리기 위해 지난 2010년 5월 건립된 미술관이다. 

제주추사관은 추사기념홀을 비롯해 3개의 전시실과 교육실, 수장고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 부국문화재단, 추사동호회 등에서 기증한 '예산김정희종가유물일괄'과 김정희 선생이 쓴 현판 글씨, 아내와 지인드에게 보낸 편지, 추사 지인의 편지 글씨 등을 전시하고 있다. 편지에는 유배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적혀 있어 당시 유배인의 생활을 엿보는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는 고단한 유배 생활에도 자신을 갈고 닦으며 '추사체'를 완성하고 유명한 '세한도(국보 제180호)'를 그렸다.

추사 김정희는 조선후기 현종 6년(1840년) 윤상도 옥사사건에 연루돼 약 9년간 제주에서 귀양살이를 했다. 

고독하고 불행했던 시기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배지에서 갇혀 지내며 학문에 매진할 수 있었기에 학자로서의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석학의 가르침에 목말라 있던 제주의 선비들에게는 새로운 학문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눈물의 십자가

▲정난주 마리아묘와 눈물의 십자가

추사유배길중 '집념의 길'을 따라 걷다보면 제주목 관노로 유배돼 살다가 추사가 유배오기 2년 전인 1838년 생애를 마친 정난주 마리아의 묘가 나온다.

정난주 마리아는 1801년 신유박해 당시 제주로 유배왔으며, 다산 정약용의 조카이자 '백서사건'으로 순교한 황사영의 부인이다.

남편과 두살배기 아들을 잃고 혈혈단신에 제주목 관비로 신분이 추락한 정난주는 모진 시련을 겪지만 신앙으로 이겨냈고, 풍부한 교양과 뛰어난 학식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다.

신앙만을 유일한 위안으로 삼고 37년간 하느님께 봉헌된 삶을 살다가 1838년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자, 유해를 이곳에 안장해 신앙의 증인으로 추모하고 있다. 

추자도에도 정난주 마리아의 유배 흔적이 남아 있다. 

제주로 유배가는 도중, 아들인 경한마저도 관노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해 아들만은 평민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제주도 향해 가던 중 추자도 갯바위에 내려놓고 떠났다고 한다. 

사람들은 역사적 배경과 함께 제주에서 처음으로 천주교가 뿌리를 내린 곳이라는 의미를 담아 '눈물의 십자가'로 불리는 조형물을 설치했다.

제주도 기념물 제 1호 오현단

▲오현단

제주도 기념물 제 1호로 지정된 오현단은 조선시대 제주에 유배됐거나 방어사로 부임해 교학 발전에 공헌한 5명을 배향했던 터다.

'오현(五賢)'은 중종 15년(1520)에 유배된 충암 김정 선생, 중종 29년 (1534)에 목사로 부임했던 규암 송인수 선생, 선조 34년(1601)에 안무사로 왔던 청음 김상헌 선생, 광해군 6년(1614)에 유배된 동계 정온 선생, 숙종 15년(1689)에 유배된 우암 송시열 선생 등이다.

숙종 8년(1682) 귤림서원으로 사액하고 김정 선생, 송인수 선생, 김상헌 선생, 정온 선생의 4현을 봉향하다가 숙종 21년(1695) 송시열 선생이 추향됨으로써 5현을 배향하게 됐다.

귤림서원은 1871년 전국에 내려진 서원 철폐령에 따라 헐리는 운명을 맞았지만 1892년 제주사람 김의정을 중심으로 귤림서원 자리에 오현의 뜻을 후세에 기리고자 조두비를 세우고 제단을 축조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지금도 오현단에는 5현의 유적으로 1856년 판관 홍경섭이 새긴 송시열 선생의 '증주벽립' 마애명과 김정·송시열 선생의 적려유허비가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3호 연북정(戀北亭). '그리워할 연'(戀)자에 '북녘 북'(北)자를 썼다.

▲연북정

조선시대 제주로 유배 온 사람들이 들어오는 관문이었던 조천포구 인근에는 제주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제3호 '연북정'이 있다.

기록에 따르면 선조 23년(1590) 당시의 조천관(朝天館)을 다시 짓고 쌍벽정(雙壁亭)으로 이름지었다가 1599년 다시 건물을 짓고 '연북정(戀北亭)'으로 개칭했다. '그리워할 연'(戀)자에 '북녘 북'(北)자를 썼다. 

유배 온 사람들이 제주의 관문인 이곳에서 한양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면서 북쪽에 있는 임금에 대한 사모의 충정을 보낸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 한다.

연북정은 꽤 높직한 축대의 북쪽으로 타원형의 성곽이 둘러싸여 있는데, 옹성과 비슷한 것으로 미뤄보면 연북정이 조천진성의 망루 용도로도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김봉철 기자 bckim@jemin.com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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