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병찬 서예가·시인·논설위원

기해년 돼지해가 다 저물어 가고 있다. 하루를 마감하는 시각에 찬란한 노을을 이끌고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저 붉은 해와 같이 금년 한 해도 보람의 발자취만 있었나 했더니 아쉬움도 남긴 채 넘어가고 있다. '아침에 동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의 빛깔도 소리치고 싶도록 멋이 있지만, 저녁에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 지는 태양의 빛깔도 가슴에 품고만 싶다.'고 표현한 용해원님 시처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아름다운 마음의 추억을 그려본다.

아름다운 마음을 다짐하는 김준엽 시인은 자신의 인생길을 표현한 시에서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채 시인은 '마음의 평화는 비움이 주는 축복이요 영혼의 향기는 낮춤이 주는 선물이니, 비우고 낮추는 삶은 곧 내 안에 천국을 가꾸는 일입니다.'라고 비움과 낮춤을 강조했다.

마음을 비운 자리엔 대 평원이 있다. 쇠사슬 같은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커다란 바위에 짓눌려 살아온 온갖 규제에서 해방되어 갇혀있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연다면 거기엔 자유롭고 행복한 대 평원이 펼쳐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버리고 비우는 일은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마음 비우기 글에서는 '두 손을 꼭 움켜쥐고 있다면 이젠 그 두 손을 활짝 펴십시오. 가진 것이 비록 작은 것이라도 그것이 꼭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나누어 주십시오. 이는 두 손을 가진 최소한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라는 구절을 보았다. '마음을 비우기 전엔 몰랐던 세상이 마음을 비우고서야 이제 아름다움을 알았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나니 마음을 비운 만큼 채울 수 있다는 것도 이제야 알았습니다. 마음비우기 전에는 세상사람 모두를 불신하고 믿지 않았는데 세상은 아름답고 향기롭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라는 공감이 가는 구절을 되뇌어 번다. 여백의 아름다움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비워지는 마음에서 평화로움을 찾아 마음을 비워가는 연습을 해보련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 터이라 '산을 옮길 수는 있어도 습관은 바꾸기 어렵고, 바다는 메울 수 있어도 욕심은 채우기 어렵다.'라는 말과 같이 태어날 때부터 본능에 가까운 욕심이 삶의 바탕에 깔려 있기에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없는 어려운 마음의 혁명일 것이다. 그러나 채근담에 나오는 말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한 걸음 양보하는 것이 뛰어난 행동이니 물러나는 것이 곧 나아가는 바탕이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을 음미하며 나 자신의 욕심을 타인에게 양보하는 미덕으로 바꾸어 가는 아름다운 길을 생각해 보자.

사람이 산다는 존재의 이유에서 보면 어떤 일터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느냐는 점에서는 전적으로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 영원불멸 같은 꿈, 완전한 인생, 완전한 성공 등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본능에 가까운 욕심의 쇠사슬에 사로잡혀 있다면 아름다운 마음의 여백이라곤 한 뼘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 전쟁터 같은 욕구에서 벗어나 꽃밭 같은 아름다운 평원으로 옮기는 전환의 길에 올라서서 생각해 보련다. 장자의 가르침 중에 낙출허(樂出虛)라는 구절이 있다. '최상의 즐거움은 텅 빈 것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다. 마음을 고요하게하고 한가하게 지니고 분수에 넘치게 바라는 마음을 반쯤 접어 둘 때 즐거움이 생겨난다는 뜻이겠다.

늘 상 시끄러웠던 정치계이지만 요즘은 더 시끄러운 우리 정치계에서 몇몇 인사들이 다음 선거에 불출마 선언을 하고 나온 분들이 있어 이들은 참으로 훌륭하구나, 얼마나 자유로울까, 얼마나 넓은 세상을 맛볼 수 있을까, 얼마나 더 큰 구상을 할 수 있을까, 온 누리가 다 자신의 것이 되고도 남음이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삶의 진리가 지식이나 재물이나 권세의 축적에 있지 아니하고, 어느 가수의 말처럼 백년도 못살면서 천년이나 살 것처럼 아등바등 살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가고 싶은 곳에도 다 가며. 그래서 즐겁게 웃으며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삶의 여백을 찾아보는 것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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