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영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논설위원

독일에서 공부하던 시절 독일친구와 독일 방송을 같이 볼 기회가 있었다. 우리나라 정치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아나운서가 당시 우리나라 여당과 야당의 명칭을 소리 나는 대로 'Uri-Partei'(열린우리당), 'Hannara-Partei'(한나라당)로 읽었고, 그 독일 친구는 신기한 듯 정당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를 내게 물으며 더불어 우리나라 정치에 관한 얘기를 이어나갔었다.

그 독일 친구에게는, 독일의 대표적 정당인 CDU(기독교민주연합, Christlich Demokratische Union)와 SPD(독일 사회민주당, Sozialdemokratische Partei Deutschlands)처럼 정당의 정치적 이념이나 근본적 신념을 표방하는 당명을 가지고 있는 것에 반해, 당시 우리의 여당과 야당의 이름이 다소 감성적이고 프로파간다(propaganda)적이어서 흥미로워 했다. 그러나 기실 곱씹어보면 정당과 관련하여 정말 흥미로운 지점은 당명에만 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명멸했던, 이름을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의 그 수많은 정당이 있었다는 것도 그러하거니와 그럼에도 그 정당들의 정치적 지향점과 스펙트럼은 사실 너무도 단순하다는 것도 보통의 수준에서 보자면 놀랄만하다. 왜 그런가를 요약하자면, 약간의 정치적 입장의 차이로 인한 분화(分化)와 당수(黨首)를 중심으로 한 이합집산이 그 주된 원인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근본적 동인(動因)은 4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총선이다. 정치인이 정치적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법령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움직이는 것을 뭐라 할 수는 없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우리의 경우 정치적 공당(公黨)의 명멸이 가치와 국민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아니하고 정치적 이익과 그를 극대화하기 위한 이른바 정치공학적 방식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광복 이후 우리나라에는 80여 개를 상회하는 정당이 존재했다. 정당법에 따라 설립되는 정당이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친목계가 아닐진대 이토록 빈번히 창당되었다 사라진 데는 우리의 정치가 불안정했던 탓도 있었겠거니와 정당 자체의 비민주성과 미숙함도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아시아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로 우리는 민주화를 달성하였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반딧불처럼 나타났다가 스러진 정당은 그 이전보다 적지 아니하다. 

또 하나 놀라운 점은, 정당이 바뀌어도 그 구성원인 정치인들은 대부분 바뀌지 않고 계속 새 명찰을 달고 정치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정치학 교과서에 적혀있을리 만무하지만, 정치적 어려움에 당면하여 국민으로부터의 비난을 회피하고 이윽고 다가오는 총선에서 의원수를 기필코 유지하기 위해서 기존의 정당을 초개와 같이 버림과 동시에 다른 색깔의 점퍼로 갈아입고는 다시 국민인 우리와 악수하러 손 내미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마찬가지이지만 정치와 정치행위에는 필연코 책임이 따르게 마련이다. 정치적 결과에 대해서는 영광스럽든 부끄럽든 정당의 역사로서 품어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정당의 발전이 있고 민주주의의 성숙도 기대할 수 있다. 실패한 정치로 인한 선거의 결과가 두렵다고 하여 이름과 점퍼만 교체하고 나오는 것에 대해 정치적 환골탈태로 평가할 수 없음은 그 속에 정치적 명분보다는 정치적 이익만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곧 4월이 온다. 벌써부터 정당 간의 이합집산이 예고되어 있고 또 '대한민국 역대 정당'의 리스트가 길어지는 일이 반복되겠지만 그 정치적 흥행과 무관하게 대한민국의 정당은 참 초라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독일의 그 친구가, SPD가 150년 가까이 그리고 CDU가 80년 가까이 되어서 역동성이 없어라고 심드렁하게 말하던 것을 나는 오히려 경이롭고 부럽게 들었던 기억이 새삼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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