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남자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우리는 오늘도 누군가를 기다린다. 오지 않는 누군가를 한없이 기다리는 것은 현대인의 비극적 초상이다. 현대인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희망에 부푼 채, 출구 없는 미로 속에서 헤매며 탈출의 기다림을 반복하면서 살아간다. 

기다림의 희망을 잃은 사람의 삶은 사막같이 삭막한 것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현대 인간의 삶을 끝없는 '기다림'으로 정의하고, 기다림 속에서 인간존재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

작품에서 두 남자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시골길의 작은 나무 옆에서 고도(Godot)라는 이름의 사람을 기다린다. 그들은 고도라는 인물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하며, 그에게서 무엇을 원하는지도, 그가 언제 올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가 실제 존재하는 인물인지 아닌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두 사람은 대화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서로 엇갈리고 의견은 일치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심부름하는 양치기 소년이 와서 "고도는 내일 온다."고 알려 준다. 두 사람은 계속 기다린다. 거의 50년 가까이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에게 고도를 기다리는 행위는 이제 일상적 습관이 되어 버렸다. 

고도를 기다리는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블라디미르는 "고도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며 고도를 기다려야 함을 강조한다. 반면에 에스트라공은 "아무도 오지도, 가지도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정말 끔찍해. 우리 당장 죽어버리자"고 말한다. 고도를 기다리는 일이 힘겨운 에스트라공은 자살을 통해 현실의 고통을 벗어나려고 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기다린다. 그들은 실제로 기다리는 것이 없지만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자신들이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모르면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행위 자체로 위안을 삼는다. 그들의 삶은 부조리하고 허망해 보인다.

기다림의 소중함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인생은 기다림에 의해 이루어진다. 기다림에는 끈기와 인내가 담겨 있다. 헤밍웨이는 불후의 명작 「노인과 바다」를 무려 80번이나 고치고 쓰기를 반복했고,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그리는 데 1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오늘날 현대적 삶에서 기다림의 미학은 갈수록 상실되어가고 있지만, 기다림의 시간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한 통의 편지를 보내고 우체통을 바라보며 답장을 기다리던 시간, 멀리 떠난 사람을 기다리며 그의 얼굴을 그려보는 순간, 이런 기다림의 소중함이 우리에게서 사라져 가고 있다. 무엇을 기다리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직도 내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기다림의 구체적인 대상이 무엇인가 보다는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사실로써 언젠가 저 너머에 닿을 수 있다는 마음을 지닐 수 있다. 무언가 나에게 다가올 것이 아직 남아 있다는 믿음은 삶에서 가장 커다란 희망이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고도를 가슴에 간직한 채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고도를 만나는 것은 가능한 혹은 불가능한 희망을 기다리는 거와 같다. 마찬가지로 삶이 아무리 지겹고 힘든 것이라고 해도 우리의 삶을 포기할 수는 없다. 내일이면, 내일이면, 고도가 오기를 소망하면서 기다린다는 것은 그래서 아름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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