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익 탐라문화연구원·논설위원

2020년 2월 현재 현대판 역병인 코로나19(COVID-19)가 메르스, 신종 플루, 사스에 이어 전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전염병은 Jered Diamond의 지적처럼, 감염된 환자 한 사람으로부터 그 부근의 건강한 사람들에게 비교적 신속하게 전파되는 특징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코로나19만큼이나 무서웠던 역병이 창궐해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조선시대 역병은 괴질, 호열자, 염병, 역질, 마마(천연두)라고 불렸다. '호열자'는 "호랑이가 살점을 찢어내는" 고통을 준다는 뜻으로, 콜레라에 해당한다. 역병은 치료법과 치료약이 없어 수많은 사망자와 맹인, 장애인 등을 발생시켰다. 조선후기에 역병이 유행했던 이유로는 면역력 결핍, 국제 교역의 확대, 도시의 성장과 인구 밀집, 목욕을 자주 하지 않는 등 위생관념 부족 등을 들 수 있다.

17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에 약 200년 동안 역병이 전국적으로 유행했다. 이 시기 역병발생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79차례나 등장했다. 당시 역병에는 콜레라, 두창(천연두), 장티푸스, 이질, 홍역 등이 있었다.  

순조연간에도 역병이 창궐했다. 특히 1821년에 발생했던 역병(괴질)은 중국을 거쳐 한반도 북부 지역에 유입된 후, 한성, 경기, 영남, 그리고 1822년에 호남, 함경도, 강원도 지방을 강타한 결과, 한 달 동안 10만 명 이상이 사망했음이 순조실록에서 확인된다.

1822년 10월에는 제주에도 역병이 발생해 수천 명이 사망했다. 순조임금은 "뜻밖에 괴질이 천리의 바다 밖에까지 넘어가 마을에서 마을로 전염되어 마치 불이 들판을 태우듯이 한 바람에 3읍(三邑)의 사망자가 거의 수천 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아! 이게 무슨 재앙이란 말인가?"라고 탄식하시며 특별히 사헌부 집의 조정화(趙庭和)를 위유어사로 삼아 보내어 임금의 진심에서 나온 유시를 반포하게 하고, 제주목사와 함께 제사를 지내어 제주삼읍 백성들을 위안하게 조치했다. 

역병이 유행하면 정부에서는 역병에 걸린 주민들을 정상적인 사람들과 격리시켰다. 또한 혜민서(惠民署)와 활인서(活人署)에 명하여 역병으로 굶주린 사람들을 보살피게 했다(신동원, 2005). 또한 임금은 역병이 자신의 부덕과 정사의 그릇됨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해 조세를 감면하거나 죄수를 풀어주고, 수라상에 오르는 반찬 수를 줄이며 근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조정과 지방에서는 역신(疫神)을 달래기 위해 여제(?祭)를 지내게 했다. 여제는 전국 각 지역 읍성의 북쪽에 따로 설치된 여제단에서 청명일(봄), 음력 7월 15일(여름), 음력 10월 1일(겨울)에 이루어졌다. 양(노루, 사슴), 돼지, 쌀을 제물로 사용했으며, 수령이 제관을 맡았다. 문종은 황해도와 경기 일원에 전염병이 창궐하였을 때 여제 축문을 지어 내려 보냈으며, 중종·광해군·인조·현종·순조 때에도 전염병이 창궐하자 여제를 지냈다. 탐라지(1653)에 여단이 '제주성 밖 서북쪽에 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제주에서도 제주목사에 의해 여제가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민간에서는 역신을 달래기 위해 굿을 하거나, 괴질을 일으키는 쥐 귀신을 막기 위해 고양이 그림을 대문에 붙였으며, 마을 어귀에 장승을 세우거나 대문 앞에 새끼로 만든 금줄을 치기도 했다.

전염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 세계에서 발생한다. 앞으로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국가 간 신종 바이러스에 대한 정보와 치료법 공유가 필수적이다. 최근 한국의 코로나19 대처방법이 WHO로부터 인정받은 것은 한국 정부의 코로나19 해결능력을 WHO가 평가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오늘도 음압병실에서 코로나19 치료에 전념하고 있는 의사와 간호사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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