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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중한] 영화 '트로이'의 휴머니즘 읽기

기사승인 2020.04.05  19: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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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영수 제주대학교 명예교수

유럽사람들이 보는 문학개론 첫머리에 나오는 작품이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이고 이를 원본 삼아 만든 영화가 <트로이>이다. 지금부터 3천 년 전에 일어난 트로이전쟁을 소재로 했는데도 오늘날 우리의 심금을 울려주는 대목이 많다.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 왕비 헬렌을 유혹하여 데려가는 장면은, 이 작품에 담긴 낭만적 휴머니즘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리스와 트로이 간의 평화협정을 끝내고 돌아가는 국가대표가 상대국의 왕비를 납치해 간다는 것은 양국 간의 전쟁을 야기할 수 있는 일이고, 이것이 파리스 왕자의 형 헥토르의 주장이다. 헬렌을 며느리로 맞아야하는 트로이 국왕 프리아모스의 한 마디가 의미심장하다. '너희의 잘못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게 만든 신들의 잘못이다'. 헬렌처럼 빼어난 미인에게 혹하여 저지른 아들의 일탈을 용서하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그러나, 왕자가 미인을 얻는 대가로 트로이왕국이 그리스 연합군에게 패망당하는 결말로 끝나는 이 작품은 도를 넘는 낭만주의 휴머니즘이 당해야 하는 불행을 보여준다. 
 
그리스군 최고의 용장(勇將) 아킬레스에게는 전쟁에 이기는 것보다 더 중한 것이 인간적인 의리와 자존심인데, 왕명을 거역할 정도의 독불장군이자 하늘을 찌르는 용맹의 화신인 그는 알고 보면 온정어린 휴머니스트이다. 아킬레스가 친구 파트로클레스의 죽음에 대한 복수전을 벌이기 위해 트로이 왕자 헥토르를 목청껏 불러내는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에 속한다. 자신의 지휘자인 아가멤논 왕의 독선적인 명령에 따르느니 차라리 전설적인 영웅담의 주인공으로 남기를 원하는 아킬레스는 덕장(德將)이나 지장(智將)은 못되고 철저한 용장이다.
 
용맹만으로는 전쟁의 승리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작품의 구성은 인간역사의 사실적인 서술에 충실한 서사구조라 하겠다. 아킬레스가 발뒤꿈치에 파리스 왕자의 화살을 맞고서 죽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그의 가슴 한복판에 화살이 박힌 것을 그는 꿈쩍도 않고 한쪽 손으로 뽑아내는데 이것은 그의 출생시에 강의 여신인 어머니의 아들보호 묘방(妙方)을 얻어놓은 특이한 신체 덕분이다. 보통사람이라면 심장부위의 피격이 치명상이 되겠지만, 그에게는 발뒤꿈치(즉, 아킬레스건)에 박힌 화살이 치명상이 되고만 것이다. 
 
전쟁의 승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정리(情理)임을 보여주는 아킬레스나 파리스는 가슴이 따뜻한 휴머니스트임에 틀림없다. 이에 반하여, 지배자로서의 권력욕에 도취되어 약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을 상실한 아가멤논왕과 메네라오스왕이 죽음을 당하는 장면은 사필귀정의 정의감을 충족시킨다. 아가멤논은 포로로 잡힌 트로이왕실의 귀인을 노리개처럼 능욕하는 파렴치한이고, 메네라오스는 왕비 헬렌의 외로운 마음을 몰라주는 냉혈한인 것이다. 원본에서는 이들 두 형제가 전쟁 후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들의 죽음을 앞당긴 것은 관객들의 분개심을 풀어줄 기회를 주기 위함일 것이다. 

양영수 webmaster@jemin.com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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