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해녀'를 향유하다 12. 가파도 아기 해녀 ③

유용예작 '할망바다'

경험과 지혜 나눔을 통해 '다음'으로 전하는
섬 거주 5년…단순한 거주보다 일체감 기준
왕막내·늦둥이의 등장, 지켜야 할 것에 집중

지난 2016년 일본 미에현 미나미보소에서 '마지막' 제주 해녀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제주가 아닌 일본에서 물질을 배웠다는 제주 출신 해녀 3명은 반드시 둘 이상 작업을 한다는 철칙을 지킨다. 시어머니와 삼촌들에게 배운 것들이다. 세 명 중 가장 나이가 많고 경력이 긴 좌해월 할머니가 나머지 두 해녀의 테왁줄을 매 준다. 먼저 들은 지식을 전1한 것도 좌 할머니다. 마담 여기까지다. "이 언니가 없으면 물에도 못 가고 테왁도 못 만든다"는 말이 아직도 가슴에 남는다.

△까다로운 진입 조건에도 '함께'

가파도는 섬인 까닭에 해녀공동체에 진입하는 조건이 다른 어촌계들보다 더 까다롭다. 어촌계 가입을 위해 일정 금액을 내야 하는 규약외에 '최소 5년 가파도 거주'라는 조건이 맞아야 같이 물에 갈 수 있다.

유용예 해녀는 그 조건을 모두 이수했다. 섬 생활이 올해로 9년차다. 단순한 시간 이상이다. 처음 카메라를 꺼냈을 때는 그들의 삶을 기록해야겠다는 사명감 비슷한 것이 있었다. 지금은 다른 의미로 기록하고 있다. 서로를 의지하는 '물벗'으로 해녀의 삶 안에서 그들을 본다.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예측이 어렵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바다 작업에서 물벗은 자신을 다 내준다는 의미다. 바다라는 삶의 현장에서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식구(食口)'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그 전 까지 '막내'였던 강월심 해녀(57)와 나이 차만 16살이 나는 사정만 봐도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고도 남는다.

언젠가 어느 언론 매체와 인터뷰에서 유 해녀는 "한 어머니가 '용예야 너랑 나랑 물벗하여 바당가자'라고 하셨을 때 내가 진짜 해녀가 되었고, 그들의 삶으로 들어왔다 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몸이 힘들어 죽겠다고 하면서도 '죽어도 바다에서 죽어야지'하는 해녀식 표현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는 말도 했다. 

△직접 보면 알 수 있는 것

'늦둥이'의 등장은 가파도 해녀 공동체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 의미를 직접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2019년 진행됐다. 

2019년 해녀문화 우수 예술 창작 지원 사업 일환으로 열린 '가파도 해녀 프로젝트 홈커밍'이다. 세차례 태풍과 가을장마 등으로 일정이 다소 늦어지며 2019년 11월 16일부터 11월 30일까지 프로그램을 꾸렸다. 본 행사인 워크숍은 11월 16일과 17일 이틀에 걸쳐 열렸다.

제주 해녀문화는 제주 해녀들이 생업인 물질과 생활에서 생겨난 유·무형의 문화유산으로, 나잠기술, 어로 민속지식, 신앙, 노래, 작업도구와 옷, 공동체의 습속 등을 포함한다는 정의에 충실하면서도 그 안에 있는 '연대'의 힘을 끄집어냈다. 늦둥이의 합류로 가능해진 일이다.

행사 기획부터 진행까지 모든 작업을 유 해녀가 했다. 이미 상반기, 그리고 사진전 '물벗'을 통해 불턱이란 공간을 해녀 공동체 밖으로 끄집어내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해녀 삼촌들의 협조를 구하고 함께하자고 몇 번이고 손을 내밀었다. 처음 유 해녀가 가파도에 정착하게 됐던 것과 비슷한 작업이었다. 

그렇게 가파도 '홈커밍'프로젝트는 가파도 섬과 사람들, 해녀, 바다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이어져 온 공동체의 고유성과 현재성을 삶으로 체화된 인지를 사진과 영상, 설치, 유.무형의 기록을 다큐멘터리 형태로 실현했다.

△바다·해녀 삶에 대한 경외

이번 '홈커밍' 프로젝트는 유 해녀가 지난 2017년 입도 4년 차에 열었던 '낮은섬 가파도- 할망바다', 2018년 '섬섬', 2019년 '물·벗'에 이은 네 번째 작업이다. 처음 취미처럼 즐겼던 카메라에 자신이 본 해녀와 그들의 삶을 담았다. 시그니처 처럼 얹은 '낮은 섬 가파도'는 유 해녀의 마음 높이와 같다. 

첫 1년 동안은 카메라를 들고도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지 못했다. 주변을 따라다니며 지켜보면서 해녀들의 삶 속으로 조금씩 비집고 들어갔다. 산소통에 온갖 장비를 갖추고도 마냥 뒤만 쫓던 상황은 오리발 하나에 의지해 바다를 누비는 어머니들을 따라 짐을 하나 둘 내려 놓으며 달라졌다. 맨 숨으로 해녀들을 따라나서며 알게 된 것들이 '할망바다'다. 나이가 들어 깊은 물에서 작업하기 힘들어진 고령 해녀들이 작업을 하는 얕은 바다에서 배려와 공생을 배웠다.

2017 제주해녀의 얼굴-가파도어촌계 해녀. 제주특별자치도 제공

할망바다 작업에서 유 해녀는 "사진은 '빛'이 아니라 '빚'"이라고 언급한다. 바다에게, 해녀 어머니들께 진 빚은 정식 해녀로 가파도와 하나가 되는 것으로 갚고 있다. '할망바다'에서 바다와 해녀의 삶에 대한 경외를 숨기지 않았던 유용예 해녀의 두 번째 '물·벗'은 소속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해녀가 되고 나서 보이기 시작한 것들에 주목했다. '나와 물벗 하자'는 해녀식 대화를 모티브로 풍요로움을 잃어가는 바다와 공동체의 현재성에 대한 고민을 꺼냈다.

이 과정에는 해녀학교 동기인 신인 해녀들의 이야기가 더해졌다. 그리고 불턱이다. 해녀들이 작업을 준비하고 또 작업 이후 쉬는 공간인 불턱을 통해 해녀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해녀공동체와 공동체 밖의 생각을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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