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기업인 제주물마루된장학교 부정선 대표

귀농 20여년 ‘욕심 보다 진심’, 전통장 산업화 유도
친환경 농업·지역 일자리·공동체 문화 복원 연결해
“‘입맛’이 농업 경쟁력 좌우…‘다음’까지 고려해야”

“땅은 정직해요. 노력한 만큼, 공을 들인 만큼 내주죠. 아무리 좋은 농산물도 누군가 먹어주지 않으면 쓰임을 잃게 됩니다. 누가 해 주기를 기다리면 때를 놓쳐요”

6차산업, 여성 농업인, 사회적 기업 등 앞으로 경제를 지탱할 대표 키워드 몇 개만 꺼내도 바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부정선 제주물마루된장학교 대표다.

부 대표가 오랜 시간 쌓으며 지켜낸 것들은 장(醬)철학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처음에는 따로 고민하던 것들이었지만 모아 연결하며 하나가 됐다. 몇 년 전부터 농업 경쟁력을 이야기 하며 나왔던 것들을 부 대표는 삶으로 이뤘다.

농사를 지은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농사만은 않겠다고 고향을 떠났지만 태어나 습관처럼 배웠던 일들은 부 대표를 땅으로 불렀다. 땅만 파서는 살 수 없다는 고민을 하던 차에 농촌여성을 대상으로 한 일감갖기 사업(2003년 농촌진흥청)을 할 기회가 생겼다. 재료도 구하기 쉽고 어깨 너머 배운 것까지 할 수 있겠다 싶어 된장에 도전장을 냈지만 높은 현실의 벽에 한 해도 못 넘기고 항복 선언을 했다.

아픈 경험에도 부 대표는 지금 된장을 담근다.

2007년 한 해를 부 대표는 자신을 채우는 데 썼다. 한달에 한 번 2박3일 과정으로 농업 경영 비즈니스 과정을 밟았다. 막연하게 잘 하는 일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할까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그리게 됐다. 예를 들어 좋은 된장을 만든다는 일방적인 답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제값을 받게 하고, 건강한 식재료로 식탁에 올리는 것은 모두가 좋은 일이다. 이런 시스템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품질과 양의 친환경 콩을 확보해야 한다. 주변에 같은 생각을 하는 농가를 모으고, 적정한 비용을 들여 된장을 가장 잘 아는 지역 어르신의 손을 빌렸다. 그 다음은 미래 소비자인 아이들에게 ‘장맛’을 알게 하는 작업으로 차근차근 영역을 확대했다.

순환을 전제로 한 기획 농업의 틀을 도전과 경험, 실험을 통해 스스로 만들었다. 그 결과물이 2011년 문을 연 ‘물마루된장학교’다. 부 대표가 만든 된장 만으로도 시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지역 노인 일자리와 체험 프로그램·전문강사 양성까지 누가 봐도 어딘지 아쉬운 일을 찾아서 한다.

부 대표는 “요즘은 집에서 장을 담그지 않지만 예전에는 일가 친척에 동네 사람들까지 다 모여서 콩을 쑤고 메주를 만들었다. 한해 먹을 장을 만들려면 그런 수고가 필요했다”며 “입맛이 농업 미래를 좌우한다는 말을 된장에서 배웠다”고 귀띔했다.

전통장을 담그는 일은 농사를 짓는 것부터 시작해 한해를 꼬박 써야 하는 일이다. 제대로 발효가 될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야 한다. 된장으로 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된장이 다른 것은 보지 못하게 한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한해 농사가 끝나면 다음 해를 생각해야 한다. 전통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다음 세대들이 장맛을 알아야 한다. 깊은 감칠 맛은 욕심이 아닌 진심에서 나온다. 부 대표는 그래서 장독이 빈 만큼만 장을 담근다.

부 대표는 “오래 숙성한 된장이 좋지만 소비자들이 원하는 맛은 2년을 넘어서는 안 된다”며 “농업이라고 하늘만 보면 되는 줄 알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시장을 알고 변화를 살필 줄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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