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늦게 까지 가을을 품는 곳 서·귀·포

서귀포바다. 김대생 기자

불로초 전설 등에서 지명 유래…가장 먼저 봄 찾아와
느릿하게 흐르는 '서귀포 칠십리길' 과거에서 현재로

'한 때는 꽃을 사모했으나 이제는 잎들이 더 가슴에 사무친다' 했다. 그 의미에 아릿한 아픔을 느낀 것을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만추다. 같은 하늘 아래 어느 곳에선 '눈이 내렸다'는 소식으로 들썩 들썩하지만 제주 섬에는 아직 가을이 남아있다. 우리나라에서 봄이 가장 먼저 온다는 서귀포는 거꾸로 말하면 가을이 제일 늦게 남아있는 곳이다. 서서히 찾아와 마음만 흔들고 소리 없이 갈 채비를 하는 가을을 찾아 '서귀포'로 간다.

진심을 묻다

'먼저, 봄'의 공간에서 '아직, 가을'을 찾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자꾸만 말끝이 흩어지며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어디 계절이 남아 있느냐'는 우문에 '존재 자체가 가을'이라 답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서귀포를 상징하는 노래의 느낌도 가을에 가깝다. 오래된 대중가요 '서귀포 칠십리'를 턴테이블에 올린다. 툭툭 하는 미세한 마찰음 뒤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의 목소리가 몇 번인가 '서귀포'를 부른다. 인적 드문 바닷가 마을에 곳곳에서 외로움이 묻어난다. 이 느낌은 몸과 마음에 훅하고 다가온 감기와 닮았다. '그리워 그리워' 노래를 하지만 온통 흔들어 꼼짝 못하게 하는 단계를 넘어서 툭툭 털고 나면 있었던 듯 없었던 듯 데면데면해진다.

이국적 경치에 종종 국적을 의심받는 서귀포의 진심이다. 이름의 유래는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뒤 불로장생하기를 원하여 방사(房士)로 유명한 서복(西福)으로 불사약과 불로초를 구하라 명한다. 서복은 삼신산 중 하나인 영주산, 그러니까 한라산에 사람을 풀어 영약을 찾아오도록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결국 그들은 제주도에서 신선이 먹는 열매로 알려진 암고란 또는 시로미라고 부르는 식물을 채집해 섬의 서쪽으로 돌아가면서 정방폭포 절벽에 '西市過此(서시과차)'라 새겨 놓았다.

서귀포라는 이름은 '서시과차지포(西市過此之浦)', 서시가 지나간 포구라고 '서과포(西過浦)'라  표현한 것이 서귀포(西歸浦)로 바뀌었다고도 하고 또는 그가 서쪽으로 돌아갔다는 뜻으로 서귀포(西歸浦)라 했다고도 한다.

  시는 서귀포가 다 지어준다

갈바람이 분다. 중국쪽에서 불어오는 서풍이다. 슬쩍 서귀포가 당긴다. 그 기분에 취한 이가 어디 나하나 뿐이었으랴. 어느 시인의 노래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끄덕한다. 

"서귀포가 그대로 하나의 詩이므로/시인은 주막에서 술에나 취하면 된다//시인이 술에 취하면서 귀만 열고 있으면/詩는 서귀포가 다 지어 읊어준다//그래서 서귀포 사람은 다 시인이고
시인은 바닷가에서 돌이나 주으면 된다…"(정인수 시 '삼다도(三多島)'에서)

눈에 박혀 머리를 거치고 가슴에 닿은 것들은 쉽게 글이 되지 않는다. 그냥 두어도 시인 것에 굳이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냐고 물으면 입은 더 무거워진다. 호흡을 조절하며 시를 낭송하는 계절의 느낌은 이즈음과 닮았다. 예향(藝鄕)이란 자기소개는 결코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았다.

파스텔톤으로 빚어진 봄은 노래를 하고, 낡은 갈색의 흔적이 쌓이는 이 계절에는 가급적 말을 아끼고 듣게 된다. 오죽하면 한 인터넷 서점의 서적 판매량 분석에서 '가을=시'라는 공식을 찾아냈을까. 필사책과 컬러링북, 명언집 까지 직접 쓰거나 색으로 채우는 짧은 문집들은 조금 관심이 덜하고 더하는 차이가 있을 뿐 꾸준하게 사랑을 받고 있다.

△ 서귀포칠십리길의 향수

지난 2007년부터 브랜드 작업을 진행해 온 '서귀포 칠십리길'도 가을에 제대로 맛이 든다. '가을 전어'급이다. 서귀포칠십리길은 1132번 일주도로와 나란히 달리는 중산간도로(1136번)의 한 구간이다. 조선시대 새로 부임한 현감이 초두순시를 다니던 길로 성읍에서 의귀를 거쳐 서귀포까지 70리(약 28㎞)에 이른다. 세월이 흘러 옛 모습은 사라지고 없지만 한 때 섬 사람들의 안식과 위로, 꿈을 연결했던 역할을 생각하면 '조금은 느릿하게 흐르는 길'은 싫지 않다.

제주목사 이원진이 1653년 발간한 탐라지(耽羅志)에는 '서귀포는 정의현청에서부터 서쪽 70리에 있고 원나라에 조공할 때 순풍을 기다리던 후풍처였다'고 기록돼 있다. 지금은 '새로 부임한 현감이 성읍 객사에서 출발해 서귀포구까지 초도 순시를 나섰던 길'이란 의미로 정리했다.

성읍민속마을을 출발해 신흥리, 의귀리, 위미리를 거쳐 토평사거리에서 서귀포구에 닿는 길이다. 가을볕을 만끽하며 중간 중간 샛길로 빠져 주변 명소를 둘러보고 가면 그만이다. 

마치 눈 앞에서 영사기가 돌 듯 옛 생활풍습에서 오늘 사람들의 삶이 약속이나 한 듯 겹쳤다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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