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목리 자리돔.

장마와 더위가 찾아올 무렵 갑옷 두른 듯 드센 자리돔 잡혀
모슬포 보목리 비양도 등 잡히는 지역마다 맛과 요리법 달라
여름 밤바다 하늘에 별이 뜬 듯 한치잡이배 불빛으로 가득
대형꼴뚜기에 가까우 오징어보다 한수위 맛과 풍미 최고 

장마와 더위가 함께 오는 무렵 제주바다에는 작지만 강한 놈들이 돌아온다. 작은 몸집에도 날카롭고 강한 비늘과 가시로 단단한 갑옷을 두른 기사가 연상되는 자리돔과 때로는 하얗고 때로는 투명하게 여름바다를 휘젓는 한치다.

자리돔은 장마철이 한철로 모슬포나 보목리 등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큰 버팀목이 돼 왔다. 한자리를 지키는 어종이라고 불릴 정도로 토착성이 강하다. 같은  제주바다를 누비더라도 모슬포냐 보목이냐 대정이냐 한림이냐 등 지역에 따라 자리의 크기나 육질, 맛이 제각각이다.

모슬포 자리는 국토 최남단인 마라도와 가파도 사이 강한 물살을 견디며 탱탱한 육질을 자랑하며 크기도 커 구워 먹기에 좋다. 

서귀포 보목 자리는 지귀도와 섶섬 일대의 넉넉한 해조류로 배를 채운 덕에 뼈가 부드럽고 맛이 고소해 물회에 안성맞춤이다. 한림읍 비양도 연안에서 잡은 것은 자리젓용으로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자리와 함께 떠오르는 것이 제주 전통어업 방식인 테우잡이다. 제주전통 뗏목형태의 배인 테우를 쓰면서 그물로 뜨는 방식이다. 전통 자리잡이는 '출륙금지령'으로 먼바다에 나서지 못했던 제주선조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자리가 잡힐때면 보릿대를 깐 자리돔 바구니를 지게에 싣고 동네마다 팔러 다니던 풍경도 옛 추억이 됐다.

여름이 되면 제주에는 바다에도 별이 뜬다. 어둠이 짙어진 밤에도 한치잡이 어선에서 비치는 조명등 불빛은 가득해 마치 별들이 뜬 것처럼 연상되기 때문이다. 

한치잡이를 제주에서는 '낚는다'고 하지 않고 '붙인다'고 표현한다. 수십미터에 이르는 줄에 묶인 미끼를 한치가 삼키는 것이 아니라 다리로 미끼에 달라붙기 때문이다. 강하고 묵직한 느낌이 들면 서서히 낚시 줄을 당겨 올리면 된다. 

제주하면 '한치' 울릉도 하면 '오징어'가 떠오를 정도로 한치는 제주를 대표하는 어종이자 여름음식이다.

"한치가 쌀밥이라면 오징어는 보리밥이고, 한치가 인절미라면 오징어는 개떡이다"할 정도로 한치를 오징어보다 한수위로 대접한다. 한치는 창오징어로 꼴뚜기(화살오징어)과의 대표 어종이다. '한치'라는 별명은 다리길이가 한치(一寸, 3㎝)밖에 되지 않는다는 데서 유래됐다.

화살을 닮이 화살오징어라고도 불리는 한치는 일반 오징어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며, 뾰쪽하고 지느러미도 마름모꼴이다. 

한치는 오징어와 생김새는 비슷하지만 대형 꼴뚜기에 가깝다. 같은 연체동물로 살오징어목에 속하지만 오징어는 살오징어과, 한치는 꼴뚜기과로 분류된다. 눈에 막이 있으면 한치, 막이 없으면 오징어로 판별한다. 

조선시대 해양생물을 집대성한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한치를 오징어와 꼴뚜기를 '종잇장처럼 얇은 뼈를 가지고 있는 귀중한 고기'라는 뜻의 '고록어(高祿魚)'로 표현했다. 

특히 제주에서 집히는 한치는 다른지역의 한치나 여느 오징어보다 더욱 보드랍고 맛깔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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