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풍미했던, 하지만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별을 찾는 방송 프로그램이 있었다.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는 노래를 오랜만에 흥얼거리며 그런 때가 있었지 했던 것도 잠시 과연 그런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세게 친다.

△무작정 문을 열고 밖으로
그만큼 덥다. 푹푹 찐다는 말이 온 몸으로 느껴질 정도다. 그렇다고 '밤'을 포기할 수는 없다. 낮보다 눈부시지는 않지만 '해가 졌다'는 말을 스위치로 잊었던 감각들이 살아난다. 한껏 달아오른 피부 위로 부드러운 솜털이 굴러가는 듯한 느낌에 짜릿 달콤하기보다는 조금은 알싸하거나 적당히 달큰한 기운이 정도다.

인디 앨범 속에서 찾은 '그 노래' 만큼이다. "밤하늘 그 아래 모두가 잠든 시간 고요한 도시에 내 마음 숨겼던 날 어른이 된 것 같았던 낮 아이가 돼버리는 밤 지나는 바람도 내리는 소나기도 하나둘 모든 게 너로 다 이어지던 날 길을 걷다가 무심코 또 하늘을 올려보는 날…" 낮게 읊조리는 느낌이 좋아서 무작정 문을 열고 나선다.

제주의 밤이다.

바다에 가까이 갈수록 소금기 머금은 비릿한 냄새가 발을 끌고, 산으로 향하면 발끝을 세운 공기의 아슬아슬한 느낌이 잠을 밀어낸다.

원하는 대로 배경음악의 정도를 맞출 수 있다. 화려한 무대도 있고, 작은 공간도 있고, 적당한 백색소음도 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마법 같은 지금 이 순간'에 취해 흥청거릴 수도 있다.

'더워'를 연발하며 선풍기 모터며 에어컨 실외기의 웅웅거림에 시달렸던 귀에 이만한 선물은 호강 축에도 못 든다. 눈은 또 어떠한가. 제대로 뜨지도 못해 실눈으로 바라보던 것들이 조금씩 커지고 넓어진다. 개와 늑대의 시간은 순간 놓칠지언정 이런 마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멋지다.

△ 그냥 안아줬으면 해
멀리 검게 물들어 존재를 알아채기 힘든 수평선이 하나 둘 '나 여기 있어' 손을 드는 밤이다.

"…두 손으로 내가 나를 달래고 다 사라질 거야 모두 지나갈 거야 따스하게 잠든 어느 날처럼 그날 그 밤 그 별빛 아래서 누구든지 그냥 안아줬으면 해"하는 부분을 몇 번이고 돌려 듣는다.

제주의 여름밤은 위로다. 한낮은 조금은 아프고, 살짝 무섭다. 자외선 지수가 치솟고, 수은주가 들썩 거리는 물리적인 것들을 떠나 누군가에게는 자유일 수 있지만 누군가는 치열하게 삶과 싸우는 시간이란 느낌이 힘겹다. 밤은 다르다. 전부는 아니지만 적어도 조금은 느슨하고, 나눠 줘도 좋은 느낌이다. 어쩌다 벌레 물린 자리에 적당히 얼음 찜질을 한 것처럼 좋다.

열대야에 잠 못 드는 밤이라고 말하면 힘부터 빠진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제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시간이라고 하면 어떨까. 지난달 마지막 금요일 문을 연 야간서점도 있고, 불야성이라 후끈한 해변도 있다. 별 헤는 밤도 정해져 있지 않다. 오늘이라도 하늘을 보면 별 하나에 사랑과 우정을 셀 수 있다.

그러니 해가 지는 순간을 기다릴 일이다. 조심스럽게 창 밖을 살피고 여름해가 훅하고 붉은 한숨을 토해낼 때까지 심호흡을 한다. 그냥 가기 아쉬워 길게 꼬리를 늘어뜨린 해에 슬쩍 눈을 흘기고 주섬주섬 채비를 한다. 툭툭 하고 어둠이 신호를 하면 일어난다. 그리고 나간다. 여름, 그리고 달밤, 더불어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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