馟(도)·栖(서)·關(관)프로젝트 / 도서관, 마을 삶의 중심이 되다 <2> 제주북초 김영수도서관

30년 넘은 마을도서관 공백 학교 협업 통해 채워
예산 아닌 관심, 공감으로 공동화 문제 해소 시도
5월 말 공식 개방…함께 만들고 키우는 공간 기대 

'원도심 살리기'바람은 꽤 오래 불었다.

신도심 조성으로 시작된 공동화 현상은 갈수록 심화했고, 농어촌만큼 심각한 인구감소와 고령화 등의 문제를 안게 됐다. 정작 필요한 것을 찾지 못한 탓이 컸다. '사람이 모이게 한다'는 큰 그림을 그렸지만 무엇이 사람을 오게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던 때문이다. "우리 마을에 도서관이 없어요"라는 외침이 불러온 반향은 그래서 더 묵직하고 짙게 다가온다.

△ 주민 삶터를 떠나다

원도심 회생 작업은 기대만큼의 성과에 이르지 못했다. 번창했던 과거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는가 하면 개발 반사이익이 먼저 작동하며 마을 기능을 떨어뜨리는 반작용을 낳았다.

제주시 원도심 활성화를 내걸고 지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문화예술거리 조성 사업이 진행됐다. 2014년부터는 빈점포 임대사업을 통해 예술가 입주를 유도했다. 2017년에는 '오래된 미래 모관(城內)-옛것을 살려 미래를 일구다'를 비전으로 한 제주시 원도심 도시재생 전략계획을 세웠다. 지역자원과 역량을 집중하고 도시재생사업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역사경관·문화예술·주민친화·사회경제 재생이라는 4대 핵심목표와 7대 추진전략을 설정했다. 올 들어서도 관덕정을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 마중물사업 계획이 공개됐다. 2030년까지 286억원을 들여 연차적으로 관덕정 광장 및 주변 지역을 활성화한다는 구상이다.

이 정도면 원도심에 살고 싶다는 사람들이 줄을 설 일이지만 현실은 다른 얘기를 한다. 2010년 4584세대·9793명이던 삼도2동 주민(주민등록 기준)은 지난해 말 4161세대·8397명으로 줄었다. 올 들어서도 1월 4168세대·8394명, 2월 4145세대·8345명, 3월 4131세대·8319명으로 감소 추세다.

2010년 3854명이던 일도1동 주민은 지난해 말 2884명이 됐다. 건입동은 2016년 1만명 선이 무너지면서 지난해 말 9610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010년은 1만1002명이었다.

△ "우리 마을에 도서관이 없어요"

그렇게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공간에 도서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챈 것을 그리 오래지 않은 일이다.

1957년 문을 연 제주 최초 공공도서관인 제주도립도서관은 원래 원도심에 있었다. 1996년 노후화 등의 이유로 주소와 이름(제주도서관)을 바꾸면서 이후 30년 넘게 도서관 없는 마을이 됐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려줘서 알았다. 마을이라는 이름을 단 공간을 만들면서 공동체의 의미를 확인하고 문화라는 것을 만드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묵묵히 제주시 원도심을 지켜온 제주북초등학교 김영수도서관이 꼬박 50년 만에 마을도서관으로 재탄생했다.

제주북초 학교 도서관은 1968년 기업인 故 김영수씨가 모교에 대한 애정을 담아 기증했다. 이후 학교 안 공간으로 쓰였다. 이 곳을 마을과 같이 쓰자는 생각은 2017년 '마을이 학교로 걸어왔어요'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 제주북초 학생들과 지역 미술전문가가 학년별 주제로 나눠 1년 동안 마을을 살폈다.

학부모와 지역주민을 위한 인문학 밥상도 차려졌다. 영화를 메인 요리로 옹기종기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인문학프로젝트 '가족이 함께하는 아주 특별한 그림책 만들기'까지 마을은 마을 나름의, 학교는 학교의 특성을 담은 프로그램을 주고 받으며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하기에 이른다.

품앗이 마을교육 협동조합이 만들어지고 도서관은 어른과 아이, 과거와 미래, 대화와 소통을 쌓아 탈피를 시작했다. 기존 도서관 공간 외에 예전 관사와 창고 건물까지 새 도서관의 일부가 됐다. 지상 2층, 건축연면적 365.03㎡ 규모의 공간 구석구석 누군가의 관심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제주도 도시재생지원센터와 제주북초가 뜻을 모았고, 제주도와 제주도교육청이 협업을 통해 국비 등 총 9억원을 투입했다. 사업계획 수립을 위한 학부모 설명회, 지역주민 워크숍, 국토교통부 주민참여 프로젝트팀 공모사업 참여 등 절차도 차곡차곡 밟았다.

△아이 웃음 따라 어른 발길

햇볕이 드는 방향에 따라 아이들은 숨겨진 전설의 비밀을 풀고, 자신들만의 시간을 확인한다. 아이들의 바람을 담은 들보가 단단한 하늘 역할을 하고 창은 안과 밖의 경계라는 역할 대신 발코니와 손을 잡고 시간여행 안내자로 반짝인다. 한 눈에도 따스한 공간의 힘은 한옥 구조에서 우러난다. 리모델링을 맡은 권정우 건축사(탐라지예 건축사사무소)는 작업 내내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키를 낮췄다. 성읍마을에서 1년 이상 비바람을 맞아 단단해진 참나무를 구하고 평생 나무문을 짠 장인까지 열과 성을 다한 결과물 안에서 아이들이 웃는다. 아이들의 웃음을 따라 어른들이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올해 제주북초 병설유치원 신입생은 46명이다. 지난해는 21명이었다. 1학년 교실에는 37명이 모였다. 예비 신입생 조사 때 파악한 숫자는 30명에 훨씬 못 미쳤었다.

도서관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모자라지만 앞으로 도서관 덕을 볼 채비는 착착 진행 중이다.

주민 커뮤니티공간으로 활용할 카페와 학부모 참여로 꾸려지는 회원제 '온기나눔'아이돌봄방,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아기자기한 동선과 서로의 호흡을 금새 눈치챌 수 있을 만큼 오밀조밀한 공간들이 5월 말 공식 개방을 앞두고 채워지고 있다.

원도심의 미래를 위한 작은 중심을 오래 지키기 위한 마을도서관 활동가 교육이 꾸려졌고, 먼저 자리를 잡은 다른 지역 마을도서관도 답사했다. 동문 등을 중심으로 한 책 모으기 작업도 한창이다.

아이들에게 "도서관이 어떤 곳이야" 물었을 때 수십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을 만큼 풍성하다. 그것은 학부모나 지역주민들에게도 해당된다.

마을도서관 운영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학교 공간이기 때문에 도서관과 관련한 책임은 학교가 져야 한다. 

박희순 제주북초 교장은 도서관 한 켠에 적힌 故 김영수씨의 좌우명을 가리켰다. '모교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고향을 사랑할 줄 모르고, 고향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른다'. 박 교장은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것을 확인하는 공간"이라며 "아이들도 도전을 하는데 어른들이 못 할 것도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