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적 범행” “성폭행 대응” 공방

23일 공판준비기일 진행…검찰·변호사 모두 진술
범행동기·물품 구입·문자메시지 두고 엇갈린 주장

 
종합=전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고유정(36·여)에 대한 첫 재판이 23일 열렸다. 이날 재판부는 검찰이 적시한 공소사실과 고유정의 주장 등을 토대로 쟁점을 정리하고 입증계획 등에 대한 의견을 청취했다. 사체손괴 및 은닉 혐의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범행동기 등을 두고 공방이 예상되고 있다. 

△상반되는 범행동기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정봉기 부장판사)는 공판준비기일인 23일 오전 201호 법정에서 살인과 사체손괴, 사체은닉 등 3가지 범죄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고유정에 대한 첫 재판을 열었다.  

이날 공판준비기일은 고유정 변호인과 검찰측, 피해자 유족측 변호인 등이 출석한 가운데 검찰과 변호인측 모두 진술, 쟁점 정리, 입증계획 등 순으로 진행됐다. 고유정은 앞서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유정은 지난 5월 25일 오후 8시10분에서 9시50분 사이 제주시 조천읍 한 펜션에서 미리 구입한 수면제인 졸피뎀을 음식물에 희석해 전 남편 강모씨(35)에게 먹은 후 살해한 혐의다.

또 이튿날인 26일부터 31일 사이 사체를 손괴한 후 제주 인근 해상에 사체 일부를 버리고, 고유정의 친정이 소유하고 있는 김포 아파트에서 나머지 사체를 추가 손괴해 쓰레기 분리시설에 버린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모두 진술을 통해 고유정이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강조했다. 범행 전 인터넷을 통해 범행도구를 사전에 검색하고 범행장소를 물색한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검찰은 이혼과정에 피해자에게 형성된 왜곡된 적개심과 아들에 대한 비현실적 집착 등을 고유정의 범행 동기로 판단했다. 

반면 고유정 변호인은 전 남편의 성폭행 시도에 대응해 살해했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변호인은 "이혼과정에서 증오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공소장을 보면 피고인이 졸피뎀, 혈흔, 전기 충격기, 니코틴 치사량, 빼 강도, 뼈 무게, 제주바다 쓰레기 등을 검색했다"며 "그렇다면 피고인 변호인측은 왜 검색을 했는지 다음 공판까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범행 전 물품 구입

고유정이 범행 전 구입한 물품도 쟁점이 될 전망이다. 

고유정은 지난 5월 20일 인터넷 쇼핑몰과 마트 등에서 가스버너와 몰카패치, 들통, 핸드믹서기 등을 구매해 제주에 있는 친정으로 배송시켰다. 

또 이틀 뒤인 22일 마트에서 락스 세제, 표백제, 고무장갑, 김장용 비닐팩, 부탄가스 등을 구매했다. 

검찰은 고유정이 전 남편을 살해하기 위해 사전에 범행도구를 구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고유정 변호인은 범행을 위해 물품을 구매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변호인은 "피고인이 범행 전 물품을 구입한 부분에 대해 최대한 기억을 되살려서 어떤 이유로 했는지 정리하겠다"며 물품 구입 이유를 설명하지는 못했다. 

재판부는 "그런 물건들이 어떻게 된 것인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주문했다. 

△범행 후 문자메시지

고유정이 전 남편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검찰의 공소장 내용대로라면 고유정이 전 남편을 살해한 이후 문자메시지를 서로 주고받은 것처럼 알리바이를 꾸민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자메시지 내용만 보면 고유정은 지난 5월 27일 전 남편에게 "성폭력 미수 및 폭력으로 고소하겠다"는 내용을 보냈고, 전 남편은 "미안하다"는 취지로 답변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고유정이 이틀 전 범행을 숨기기 위해 전 남편 휴대전화를 이용해 자신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고 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사망시각과 관련해 검사의 주장대로라면 그와 같은 문자메시지는 우발적 살해라는 주장과 대치되는데, 다음 기일까지 이유를 설명해달라"고 말했고, 변호인은 "살해 이후 발송한 문자메시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입장을 정리하겠다"고 답변했다. 

다만 변호인은 고유정이 전 남편을 살해한 이후 사체를 손괴하고 은닉한 혐의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고유정 변호인은 재판 직후 기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피고인에게 여러 질문을 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서 답변을 듣지 못했다"며 "억울한 마음과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재판부는 이날 공판준비절차를 마무리하고 8월 12일부터 본격적인 공판을 진행키로 했다. 김경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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